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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리뷰 (무너지는 기억의 집, 딸의 시선과 죄책감, 치매가 열어놓는 실존의 질문)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더 파더(2020)는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들 중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그 경험을 재현한 작품이다.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앤서니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며, 영화는 그의 혼란된 시점을 그대로 따라간다. 관객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앤서니와 함께 표류한다. 이 불안한 경험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치매를 관찰하는 영화가 아닌, 치매를 살아내는 영화. 더 파더는 그 차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무너지는 기억의 집더 파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공간의 활용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실내에서 전개되며, 주된 배경은 앤서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다. 그러나 이 아파트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낯선 공간으로 변해간다. 가구의 위치가 바뀌.. 2026. 5. 11.
노매드랜드 리뷰 (떠남으로써 남는 것, 상실 이후의 풍경, 미국이라는 광야)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노매드랜드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하는 펀은 경제 위기로 모든 것을 잃은 뒤 밴 한 대에 삶을 싣고 미국 서부를 떠도는 여성이다. 극적인 사건도, 화려한 반전도 없는 이 영화는 오직 한 인간의 이동과 침묵과 선택만으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노마드로 살아간다는 것이 패배인지, 자유인지, 아니면 그 둘을 넘어선 무언가인지를 이 영화는 끝까지 단정 짓지 않는다.떠남으로써 남는 것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먼드 분)은 네바다주의 작은 마을 엠파이어에서 살았다. 그 마을은 미국 석고보드 제조업체 USG의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이었는데, 2011년 공장이 문을 닫으.. 2026. 5. 10.
패스트 X 리뷰 (가족이라는 이름의 전쟁, 빌런의 탄생과 복수의 논리, 시리즈의 끝을 향한 질주) 2001년 단순한 길거리 레이싱 영화로 시작한 패스트 앤 퓨리어스 시리즈는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초대형 액션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패스트 X(2023)는 그 대장정의 1부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루이스 레테리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도미닉 토레토와 그의 가족을 향한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고, 시리즈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빌런이 무대에 오른다. 오랜 팬들에게는 익숙한 공식 속에서도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는 이 작품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리즈의 마지막 챕터를 예고하는 강렬한 서막이다.가족이라는 이름의 전쟁패스트 앤 퓨리어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가족(family)'이다.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분)는 매 작품에서 이 단어를 반복하고, 그 반복은 때로 유머의 대상이.. 2026. 5. 10.
오마주 리뷰 (사랑과 영화의 경계, 시간을 넘는 감정, 예술가의 고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이야기가 있다. 스크린 속 장면이 현실과 맞닿는 순간, 허구와 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찰나의 감각. 정지우 감독의 오마주(2022)는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영화다. 한 여성 감독이 잊혀진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의 흔적을 복원하는 과정을 담으면서, 영화는 단순한 미스터리나 드라마를 넘어 창작자의 내면과 여성의 역사를 동시에 탐구한다. 조용하지만 깊이 울리는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힘—기억을 보존하고 목소리를 복원하는 힘—을 정면으로 바라본다.사랑과 영화의 경계오마주의 주인공 지완(이정은 분)은 두 편의 장편 영화를 만든 중견 감독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신작 시나리오는 투자자의 외면을 .. 2026. 5. 10.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리뷰 (두 죽음 사이에 선 샘, 침묵의 도시 뉴욕, 공포 장르 안의 삶의 의미) 2024년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존 크래신스키가 연출한 전작 두 편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한 프리퀄 작품이다. 마이클 사르노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청각에 반응하는 외계 생명체들이 처음으로 지구를 침공한 바로 그날, 뉴욕 시티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밀착해서 담아낸다. 루피타 뇨옹오가 연기하는 항암치료 중인 여성 샘과 그녀의 고양이 프로드를 중심으로 한 이 작품은, 시리즈의 공포 장르적 쾌감을 유지하면서도 죽음을 앞둔 인간이 세상의 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조용한 성찰을 담아낸다.두 죽음 사이에 선 샘 — 암과 외계 생명체 사이에서 피자를 향해 걷는 사람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청각을 소재로 한 독창적인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공포의 규칙이 공간을 침묵.. 2026. 5. 9.
거미집 리뷰 (김열이라는 예술가의 강박, 검열과 앙상블의 시대, 창작의 의미와 그 비용) 2023년 개봉한 거미집은 김지운 감독이 한국 영화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메타영화다. 영화 속 영화라는 구조 안에서 한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벌이는 광기 어린 투쟁을 그린 이 작품은, 예술과 검열, 창작자의 집착과 타협 사이의 갈등을 코미디와 드라마가 뒤섞인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감독 김열이 완성되지 못한 영화의 결말을 바꾸기 위해 배우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소란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향한 김지운의 경의이자 창작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긴 작품이다.김열이라는 예술가의 강박 — 불가능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감독거미집에서 김열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집착적 예술가의 초상이 아니다. 그는 1.. 2026.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