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 헤레디터리(2018)는 현대 공포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작품이다. 그래미닉상을 비롯한 수많은 공포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토니 콜레트의 연기는 이 영화를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축이 된다. 예술가인 어머니 애니가 자신의 어머니를 잃으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가족 안에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것들, 즉 유전과 트라우마와 비밀이 어떻게 한 가족을 파괴하는지를 공포 장르의 언어로 담는다. 헤레디터리는 슬픔에 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대한 가장 불편한 질문이다.

가족이라는 저주의 구조
헤레디터리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애니(토니 콜레트 분)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슬픔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도 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복잡했고,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믿었는지에 대해 애니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 모호한 슬픔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 모호함이 점점 공포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알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날 때, 무지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가족이라는 저주의 구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가장 은유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문자 그대로는 실제 악마적 의식과 세대를 넘는 계획이 가족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은유적으로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전달되는 정신 질환, 트라우마, 그리고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 어떻게 한 가족을 세대에 걸쳐 파괴하는가이다. 이 두 층위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공존한다는 것이 헤레디터리를 단순한 장르 공포 영화와 구분 짓는 힘이다. 애니의 가족에는 정신 질환의 역사가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해리 정체 장애를 앓았고, 오빠는 자살했으며, 아버지는 기아로 죽었다. 이 역사가 애니에게 어떤 형태로 전달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가 영화의 암묵적 공포다. 정신 질환이 유전적 요소를 가질 수 있다는 현실적 사실과, 악마적 저주가 세대를 넘어 전달된다는 초자연적 서사가 이 영화에서 서로를 강화한다. 어느 해석을 취하든, 가족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받는다는 공포는 동일하다. 딸 찰리(밀리 샤피로 분)는 이 가족의 저주가 가장 직접적으로 집중되는 존재다. 그녀는 이상하고, 경계 밖에 있으며,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식, 혹은 그녀를 통해 세상이 무언가를 보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불안한 이미지들 중 하나다. 찰리가 무엇인지, 그녀가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선택당한 것인지를 영화는 처음에는 모호하게 유지한다. 그 모호함이 이 영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공포의 원천이다. 가족이라는 공간이 안전해야 한다는 전제가 이 영화에서 철저하게 해체된다. 집은 위험의 공간이 되고, 부모는 아이를 지키지 못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큰 위협이 된다. 이 역전이 공포 장르에서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과 맞닿는다.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파괴,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 무서운 공포. 헤레디터리는 그 공포를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구조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장르 공포의 경계를 심리적 공포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슬픔이 공포로 변환되는 순간
헤레디터리의 중심에는 슬픔이 있다. 애니는 어머니를 잃었고, 그 슬픔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 큰 상실이 찾아온다. 찰리의 죽음. 이 사건이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지점이다. 찰리가 사망하는 방식은 이 영화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다.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뒤에 남겨진 아들 피터와 함께 차 안에 있던 그 정적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트라우마를 만든다. 이 장면 이후 영화의 성격이 완전히 변한다. 그 이전까지 영화는 가족 드라마의 언어로 진행되었다. 슬픔, 갈등, 소통의 실패. 찰리의 죽음 이후 영화는 공포의 언어로 전환된다. 이 전환이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슬픔과 공포가 이 영화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처리되지 않은 슬픔은 공포가 된다. 애도하지 못한 것들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토니 콜레트의 연기는 이 슬픔이 공포로 변환되는 과정을 담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다.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그녀가 극단적인 감정 상태를 과장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찰리의 죽음 이후 애니가 남편과 아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것을 고백하는 장면은, 공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날것의 감정적 순간이다. 그 장면에서 콜레트가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공포다. 슬픔의 공포로의 변환은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애도의 방식이 공유되지 않을 때, 한 가족 안에서도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처리할 때, 그 분열이 가족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애니, 그녀의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 분),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 분)는 각자 찰리의 죽음에 다르게 반응하고, 그 다름이 세 사람을 연결하는 대신 분리한다. 공유되지 않은 슬픔이 어떻게 가족을 해체하는가를, 이 영화는 초자연적 공포보다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아리 애스터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슬픔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포는 그 슬픔을 담는 그릇이었다. 공포 장르의 관습적인 장치들, 어둠, 충격, 초자연적 현상이 이 영화에서 슬픔의 외면화된 형태로 작동한다. 슬픔이 너무 크면 그것은 현실을 뒤틀고, 위협으로 느껴지며,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경험된다. 헤레디터리는 그 경험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 구현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공포
헤레디터리에서 가장 깊은 공포의 층위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그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애니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려 하고, 미니어처 작업으로 자신의 삶을 축소하여 통제 가능한 형태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미니어처 안에도 공포가 스며들고, 그녀의 통제 욕망은 실제 통제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유전이다.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받은 것들, 정신 질환의 소인, 특정 행동 패턴, 심지어 특정 상황에서의 반응 방식이 우리의 선택 없이 우리 안에 있다. 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를 규정할 수 있다는 공포가 헤레디터리의 가장 보편적인 울림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피터의 서사는 이 통제 불가능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는다. 그는 찰리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고, 그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가 경험하는 것들이 그의 내면에서 오는 것인지, 외부에서 오는 것인지가 영화에서 점점 모호해진다. 피터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 분리의 감각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안한 공포 중 하나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애니가 강령술사 조앤(앤 다우드 분)에게 이끌리는 과정은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우리를 취약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준다.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그녀는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 죽은 딸과 소통하는 것. 이 욕망이 그녀를 조앤의 의식으로 이끌고, 그 의식이 그녀의 가족에게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드러난다. 통제하려는 욕망이 오히려 더 큰 통제 상실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서사적 전환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모든 것이 드러날 때, 이 가족에게 일어난 일들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들이 경험한 모든 고통, 상실, 공포가 그들의 선택이나 실수의 결과가 아니라, 훨씬 더 큰 계획의 일부였다는 것. 이 사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결론이다.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통제의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 인간의 자유 의지와 자율성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부정이 이 결말 안에 있다. 헤레디터리는 그 부정을 공포의 언어로 말하지만, 그 말이 닿는 곳은 실존적 질문의 가장 어두운 구석이다.
헤레디터리는 공포 영화이지만, 그것이 공포스러운 이유는 귀신이나 악마 때문만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저주가 될 수 있는지, 슬픔이 어떻게 공포로 변환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 영화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토니 콜레트의 연기는 공포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퍼포먼스 중 하나이며, 아리 애스터의 연출은 장르와 드라마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