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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처스 오브 고스트 리뷰 (기억의 세 챕터, 형식의 해체,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상실)

by tae11 2026. 5. 4.

2023년 칸 국제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픽처스 오브 고스트는 바쿠라우와 아쿠아리우스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온 브라질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그는 고향 도시 헤시피의 사라진 영화관들을 찾아가며, 개인의 기억과 도시의 역사,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 형식이 어떻게 서로 얽혀 한 시대의 초상을 이루는지를 탐구한다. 아카이브 영상과 직접 촬영한 현재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교차시키는 이 작품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도이자 영화 자체에 바치는 진심 어린 헌사다. 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브라질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작품은, 상업 영화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에세이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기억과 상실, 그리고 예술의 지속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사진

기억의 세 챕터 — 아파트에서 극장으로, 극장에서 도시로

픽처스 오브 고스트는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첫 번째 챕터는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세투발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이 공간은 단순한 가정집이 아니라 필류가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쥐고 세계를 담아내기 시작한 장소다. VHS와 베타캠, Hi8 카세트에 담긴 홈비디오 영상들이 화면을 채우면서, 관객은 한 소년이 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가장 사적인 순간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 아카이브 영상들 안에는 이미 필류의 영화적 감수성의 씨앗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챕터는 헤시피 도심의 영화관들로 무대를 옮긴다. 트리아농, 아트 팔라시우, 모데르노와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이 극장들은 20세기 브라질의 문화적 생동감을 상징하던 공간들이다. 필류의 카메라는 그 현재를 담담하게 포착한다. 극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복음주의 교회, 빈 건물로 방치된 외벽, 간판만 남은 흔적들. 이 이미지들은 사람들이 함께 어둠 속에 앉아 같은 꿈을 꾸던 시간의 소멸을 애도한다.

세 번째 챕터에서 필류는 헤시피 전체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군사 독재 시기의 브라질 사회, 도시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 문화 공간의 소멸. 이 거시적 서사가 감독 개인의 성장 이야기와 맞닿는 지점에서, 픽처스 오브 고스트는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선다. 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한 도시의 이야기이고, 그 도시의 이야기가 20세기 영화 문화의 보편적인 흥망성쇠와 연결되는 것이다.

필류가 이 작품을 7년에 걸쳐 제작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바쿠라우를 촬영하기 이전부터 구상을 시작하고, 홈비디오 테이프들을 재생하며 천천히 형태를 잡아간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상업적 성과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영화는 나에게 무엇이었는가. 내가 사랑했던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이 질문들이 화면 안에서 이미지와 목소리로 천천히 펼쳐진다. 필류의 초기 홈비디오 영상들이 이 작품 안에서 갖는 의미는, 영화가 거대한 스튜디오 없이도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 영화에 대한 이 민주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픽처스 오브 고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형식의 해체 — 기억, 허구, 기록이 하나로 만나는 곳

픽처스 오브 고스트의 형식적 특징은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영화, 그리고 개인 회고록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는 점에 있다. 필류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의 영상과 현재의 이미지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시간이 공간 위에 어떻게 축적되고 또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장소를 수십 년의 간격을 두고 촬영한 두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는 순간들은, 그 어떤 설명보다 더 직접적으로 상실의 감각을 전달한다.

필류의 내레이션은 이 작품의 또 다른 핵심 요소다. 그의 목소리는 권위 있는 해설자의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사람의 것이다. 자신의 기억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확신보다는 질문의 형태로 과거에 접근하는 이 겸손함이 오히려 작품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필류가 이웃하는 소리와 아쿠아리우스의 장면들을 다큐멘터리 안으로 가져오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극영화 안에 담긴 헤시피의 건물과 거리가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과 나란히 놓일 때, 관객은 영화가 현실을 어떻게 보존하고 변형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음악의 선택도 이 영화의 감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톰 제, 시드니 마갈 등 브라질 음악가들의 곡들이 헤시피의 거리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단순한 배경음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음악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기록이자 집단 기억의 저장소이며, 필류는 이를 능숙하게 서사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의 객관성이라는 관습적 기대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필류는 자신이 주관적인 증인임을 처음부터 선언한다. 그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고, 그의 서사는 편향되어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정직하게 만든다. 제목인 픽처스 오브 고스트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사진과 영화는 이미 사라진 순간을 포착하는 매체이므로, 모든 이미지는 어떤 의미에서 유령의 초상이다. 동시에 폐허가 된 극장들은 한때 그곳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과 꿈의 흔적, 즉 문자 그대로의 유령들을 품고 있다. 이 이중성이 제목에 담긴 시적 깊이이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적 울림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상실 — 함께 꿈꾸던 장소가 사라질 때

픽처스 오브 고스트가 가장 깊이 천착하는 주제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상실이다. 이 상실은 단순히 건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관은 낯선 사람들이 같은 어둠 속에 앉아 같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공동 경험의 장소다. 그 공동 경험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필류는 이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극장들의 이미지를 통해 관객 스스로 그 상실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영화관의 소멸을 브라질 사회의 변화와 연결 짓는 필류의 시각은 날카롭고 정치적이다. 극장이 복음주의 교회로 바뀌는 현상, 도심 상권의 변화, 공공 문화 공간의 사유화는 모두 브라질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겪어온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필류는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지만, 이미지의 나열만으로도 그 변화의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픽처스 오브 고스트는 우울한 만가에 머물지 않는다. 사라진 극장들을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그것들을 되살리는 방법이라는 믿음,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가 시간을 거슬러 사라진 것들을 보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이 작품 전체를 따뜻하게 감싼다. 고다르와 파리, 펠리니와 로마, 스코세이지와 뉴욕처럼, 필류와 헤시피의 관계는 감독의 예술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필류의 작품 세계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픽처스 오브 고스트에서 전작들과 연결되는 많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필류 영화 세계의 미학적 근원에 대한 고백이자 해설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과 극장의 쇠퇴라는 현재의 맥락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를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기록하는 한,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그 믿음이 픽처스 오브 고스트를 단순한 향수의 기록을 넘어, 현재를 향한 선언으로 만든다.

 

픽처스 오브 고스트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기억에 대한 기억이며, 사라진 것들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애도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자신의 고향과 자신의 예술을 향한 사랑을 한 편의 영화 안에 담아냄으로써, 영화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에세이 영화라는 형식의 한계를 넘어, 이 작품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기억과 상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조용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 스크린이 어두워진 뒤에도, 필류의 헤시피는 우리 안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