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런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 제시카 차스테인, 헌터 맥크라켄이 출연하며,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 이 영화를 경험하는 가장 중심적인 시각적 축이 된다. 1950년대 텍사스의 한 가족 이야기를 담으면서 동시에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이 영화는, 전통적인 서사 문법을 완전히 해체하고 이미지와 소리와 내면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 영화가 불편한 관객과 압도적인 관객이 동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이 영화가 무언가 근본적인 것을 건드린다는 증거다.

존재가 묻는 질문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이 내면의 독백으로, 기도처럼, 혹은 우주를 향한 외침처럼 영화의 시작을 채운다. 테런스 맬릭은 이 질문들에 답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삶 안에서 살아 숨쉬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다. 성인이 된 잭(숀 펜 분)이 현재의 삶 속에서 이 질문들을 품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그는 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빠진 것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이 이 공허함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왜 그가 죽었는가.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가. 이 질문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그리고 우주적 스케일의 이미지들로 이어진다. 맬릭은 이 연결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도록 만든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이 존재론적 질문들을 시각적으로 담는 방식에서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관찰하지 않고 함께 움직인다. 자연광만을 사용하고, 광각 렌즈를 통해 공간을 담으며, 종종 태양을 직접 향한다. 이 촬영 방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일상적이면서도 신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을 보는 인간의 눈이 아니라 세상 안에 있는 의식의 시선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탄생부터 공룡의 시대,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이 영화의 중간 시퀀스는 많은 관객들이 가장 강렬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다. 은하들이 형성되고, 행성들이 식으며, 생명이 시작되고, 공룡들이 지구를 걷는다. 이 이미지들이 가족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연결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한 가족의 고통과 사랑이 우주적 스케일에서도 의미를 갖는다는 것. 혹은 그 의미를 찾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가 우주만큼 크다는 것. 존재가 묻는 질문들에 대한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답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맬릭은 신이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이 질문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가를 묻는다. 잭이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동생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 아래서 이 질문들이 형성되는 방식이 이 영화의 핵심 서사다. 삶이 이 질문들을 만들고, 이 질문들이 삶을 만든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권위와 상처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층위는 아버지(브래드 피트 분)와 세 아들의 관계다. 아버지는 야망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지만 직업 음악가가 되지 못했고, 성공을 원했지만 그 성공이 오지 않았다. 이 좌절이 가족을 향한 방식에서 표현된다. 그는 아들들에게 강해야 한다고,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고,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이 사랑에서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동시에 상처를 만든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이 아버지를 악인으로도, 완전히 선한 사람으로도 만들지 않는다. 그는 복잡하다. 아들에게 소리치고, 규칙을 강요하며, 자신의 기준을 가족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들과 씨름하며 웃고, 음악을 들려주며,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드물게나마 인정한다. 이 복잡성이 이 영화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가장 정직하게 담는다. 완벽한 아버지도 완전한 악당도 아닌, 자신의 상처를 가진 채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 분)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녀는 떠다니고, 아이들과 함께 뛰며, 세상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본다. 차스테인의 연기는 거의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 영화에서 은총의 시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머니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녀도 아버지의 권위 아래 있으며, 그 구조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녀의 부드러움이 아버지의 강함과 공존하는 방식이 이 가족의 현실이다. 어린 잭(헌터 맥크라켄 분)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이 영화의 가장 구체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인정이 오지 않을 때의 분노, 그리고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처럼 되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 이 감정들이 어린 잭의 내면 독백을 통해 전달된다. 특히 잭이 처음으로 분노와 폭력을 경험하는 장면들에서, 아버지의 영향이 아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권위와 상처는 이 영화에서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것이다. 모든 세대가 이전 세대에게서 무언가를 받는다. 그 받은 것 중에는 사랑도 있고 상처도 있다. 잭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이 관계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시간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탐구다.
자연과 은총이라는 두 개의 길
트리 오브 라이프는 영화의 초반에 두 개의 길을 제시한다. 자연의 길과 은총의 길. 자연의 길은 경쟁하고, 지배하며, 살아남는 것이다. 은총의 길은 받아들이고, 나누며, 사랑하는 것이다. 이 두 길이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그리고 잭의 내면 갈등을 통해 표현된다. 그리고 이 두 길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공존하는가가 이 영화가 탐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맬릭이 제시하는 이 두 길의 구분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다. 자연의 길이 나쁘고 은총의 길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아름답고 필요하며, 경쟁과 생존이 없이는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 은총도 현실과 분리된 이상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일상의 순간들 안에서 존재한다. 아이들과 함께 뛰는 어머니, 아이를 씻기는 손길,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는 순간들. 이 일상이 은총의 장소다. 우주 탄생 시퀀스가 이 두 길의 주제와 연결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야심찬 부분이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 자체가 자연의 길이다. 폭발하고, 형성되고, 소멸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명이 나타나고, 그 생명이 서로를 인식하며, 고통받는 것을 도우려는 순간들이 있다. 공룡이 다친 공룡을 발로 건드리는 짧은 장면. 이것이 맬릭이 자연 안에서 은총의 씨앗을 찾는 방식이다. 두 길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 안에 공존한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해변의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성인 잭이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부모와, 동생과 만나는 이 장면들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꿈인지를 맬릭은 명확히 하지 않는다. 이 장면들이 말하는 것은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것들은 우리 안에 남는다. 상처를 준 것들도 남는다.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우리를 만든다. 해변에서의 화해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실재한다는 것이 이 장면의 의미다. 자연과 은총이라는 두 개의 길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가장 깊은 것은 우리가 하나의 길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하고 사랑하며, 지배하려 하고 나누려 하며, 살아남으려 하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 동시성이 인간 존재의 복잡성이며, 트리 오브 라이프가 이 복잡성을 가장 광대한 스케일에서 가장 개인적인 방식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모든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이미지와 소리와 침묵으로 탐구하는 이 영화는, 테런스 맬릭의 가장 야심찬 시도이자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매 프레임이 회화이며, 브래드 피트와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는 이 추상적인 세계 안에서 가장 구체적인 인간을 만들어낸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하늘을 한번 더 올려다보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