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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리뷰 (사랑과 독살 사이의 어니스트, 지워진 역사를 되쓰는 영화, 스코세이지의 자기 성찰적 고백)

by tae11 2026. 5. 8.

2023년 개봉한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80대에 접어들어 완성한 세 시간 반의 역사 서사시다. 1920년대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인디언 부족에 대한 조직적인 학살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탐욕과 배신, 인종주의와 권력이 어떻게 한 공동체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지를 묵직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릴리 글래드스톤이 이끄는 이 영화는, 스코세이지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윤리적으로 정직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포스터

사랑과 독살 사이의 어니스트 — 한 인간 안에서 공존하는 두 가지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의 중심에는 어니스트 버크하트와 몰리 카일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가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어니스트는 오세이지 부족의 부에 이끌려 오클라호마로 온 백인 남성이다. 그는 삼촌 윌리엄 헤일의 지시 아래 오세이지 여성 몰리와 결혼하고, 그 결혼이 몰리의 가족을 체계적으로 살해하는 음모의 일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가담한다. 이 캐릭터의 가장 불편한 측면은 그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니스트는 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녀를 위해 울고,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며,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삼촌의 명령에 따라 몰리를 서서히 독살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한 인간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이고 중요한 서사적 탐구다. 악은 괴물 같은 외형을 하고 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하는 남편의 얼굴로, 아이들을 돌보는 아버지의 손으로,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온다.

릴리 글래드스톤이 연기하는 몰리는 이 영화의 도덕적 중심이자 가장 비극적인 존재다. 그녀는 영리하고 강하며, 자신 주변에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그 잘못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글래드스톤의 연기는 이 인물의 두려움과 사랑, 의심과 신뢰가 동시에 공존하는 내면을 놀라운 절제와 깊이로 표현한다. 몰리가 화면에 없는 순간에도 그녀의 존재감은 이 영화 전체에 걸쳐 지속된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윌리엄 헤일은 이 모든 것의 설계자다. 그는 오세이지 부족의 친구를 자처하면서 그들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이용해 그들의 재산을 체계적으로 빼앗는다. 헤일은 단순한 탐욕의 화신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사고의 구조를 내면화한 인물이다. 이 자기 기만이 그를 가장 위험한 종류의 악인으로 만든다.

어니스트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갖는 서사적 기능은 단순한 악당의 역할을 넘어선다. 그는 관객의 대리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오세이지 학살을 가능하게 한 것은 명백한 악인들만이 아니라,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침묵했거나 눈을 감았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어니스트는 그 침묵하는 다수의 상징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도덕적 판단을 흐리는지, 탐욕이 어떻게 양심을 서서히 잠식하는지를 어니스트의 이야기는 보여준다. 몰리와 어니스트의 관계를 통해 이 영화는 가장 친밀한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배신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한다. 거대한 역사적 폭력은 언제나 이렇게 친밀한 관계의 언어로 포장되어 왔다.

지워진 역사를 되쓰는 영화 — 이야기를 소유할 권리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이 미국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영화를 넘어선다. 오세이지 학살은 수십 년간 미국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망각된 사건이었다. 오세이지 부족은 1870년대에 오클라호마의 불모지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땅 아래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공동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 풍요는 백인 탐욕의 대상이 되었고, 조직적인 살해와 법적 조작을 통해 오세이지 사람들의 재산은 체계적으로 빼앗겼다. 이 사건에서 사망한 오세이지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조차 지금도 알려지지 않는다.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오세이지 부족 커뮤니티와 긴밀하게 협력했다. 오세이지 부족의 언어, 문화, 의복, 의식이 영화 전반에 걸쳐 세심하게 재현되었으며, 오세이지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그 이야기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스코세이지가 내리는 서사적 선택도 주목할 만하다. 라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재현되는 에필로그 장면에서 스코세이지 자신이 등장해 이 이야기의 이후를 읽어주는 방식은, 역사적 서사에서 누가 이야기를 소유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제기한다. 그 장면에서 스코세이지의 목소리가 어니스트와 헤일의 이름을 읽어 내려갈 때, 우리는 이 가해자들의 이름이 여전히 기록에 남아있는 반면 많은 피해자들의 이름은 사라졌다는 사실의 무게를 느낀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이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역사란 누가 쓰는가이다. 스코세이지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그는 하나의 선택에 직면했다. 원작처럼 FBI 요원의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 즉 백인 구원자의 관점에서 오세이지 학살을 다루는 것. 그 대신 스코세이지는 오세이지 커뮤니티와의 대화를 통해 서사의 중심을 가해자들의 이야기에서 피해자들의 삶으로 옮겼다. 이 결정이 이 영화를 더 불편하고 더 정직하게 만들었다. 오세이지 부족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도 중요하다. 그들은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이야기의 공동 설계자였다.

스코세이지의 자기 성찰적 고백 — 미국의 죄악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스코세이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절제된 동시에 가장 장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세 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은 그의 전작들이 가진 속도감 있는 편집과 거리를 두고, 대신 오세이지 땅의 광활함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리듬을 화면에 담아내는 데 필요한 시간을 허락한다.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촬영은 오클라호마의 풍경을 경이롭고 동시에 위협적인 공간으로 포착한다. 넓은 평원과 하늘, 유전의 시커먼 연기,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공간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파괴. 이 시각적 대비가 이 영화의 미학적 핵심이다.

스코세이지가 80대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맥락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의 역사에서 자신이 속한 문화가 저질러온 죄악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굿펠라스, 갱스 오브 뉴욕,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등 평생에 걸쳐 미국의 탐욕과 폭력을 그려온 그가, 이제 그 탐욕과 폭력이 미국의 가장 취약한 공동체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 전환이 이 영화를 스코세이지의 자기 성찰적 고백으로도 읽게 만든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이 스코세이지의 전작들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속도와 리듬이다. 굿펠라스의 광기 어린 편집,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과잉된 에너지와 비교할 때,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놀라울 만큼 느리고 침잠한다. 이 느림은 의도적이다. 로비 로버트슨이 작곡한 음악도 이 영화의 감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는 2023년 8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 작업에 매달렸으며, 그의 음악은 오세이지의 전통 음악적 요소와 현대적 오케스트라를 결합한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영화다. 역사적 죄악이 망각되는 방식, 그리고 그 망각에 우리가 어떻게 공모하는지를 이 영화는 계속해서 묻는다. 오세이지 학살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전형이며, 그 방식이 오늘날에도 다른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상기시킨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평생에 걸친 미국의 탐욕과 폭력에 대한 탐구를 역사적 죄악의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 작품이다. 릴리 글래드스톤의 침묵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울리는 이유는, 그 침묵이 역사가 지워버린 수많은 목소리들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