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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리뷰 (여름이 허락하는 것들, 욕망이 언어를 찾는 방식, 상실이 성장이 되는 순간)

by tae11 2026. 5. 19.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은 안드레 아시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엘리오와 스물네 살 올리버 사이에서 피어나는 여름 한 철의 사랑을 담는다. 이 영화는 사랑을 서사적 완결로 처리하지 않는다. 사랑이 일어나는 과정, 그 과정이 한 사람에게 새기는 것, 그리고 그것이 끝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감각을 담는다. 여름이 끝나도 여름은 남는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여름이 허락하는 것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배경은 1983년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 인근의 작은 마을이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의 가족이 여름을 보내는 이 장소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고대 유물이 발굴되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누비며, 수영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 여름의 리듬이 이 영화 전체의 감각적 배경을 이룬다. 느리고, 감각적이며, 무언가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공기. 여름이라는 계절이 허락하는 것들이 있다. 일상의 규칙이 잠시 느슨해지고, 몸이 더 많이 노출되며, 시간이 있고 공간이 있다. 올리버(아미 해머 분)가 엘리오의 가족에게 와서 학술 조수로 함께 생활하는 것이 그 계절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함께 수영하며 함께 식사하는 것들이 여름이라는 계절이 허락하는 친밀함의 형태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그 친밀함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연출은 이 여름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그의 카메라는 서두르지 않는다.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는 바람, 오래된 집의 내부, 강가의 빛, 저녁 식사 자리의 촛불. 이 모든 것들이 영화 안에서 충분한 시간을 얻는다. 관객은 이 공간 안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 감각이 엘리오와 올리버의 이야기가 발생하는 토양이다. 이 여름이 허락하는 특별한 공간 안에서, 특별한 감정이 자랄 수 있었다. 수플리카 에 슬라비코라는 음악이 흐르는 장면에서 엘리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순간은 이 영화에서 가장 관능적인 장면 중 하나다. 그는 같은 곡을 여러 번 변주하면서 연주하고, 올리버는 그것을 듣는다. 두 사람 사이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음악이 그 사이의 공간을 채운다. 음악이 언어 대신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 변주가 감정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는 방식이 이 장면에서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다. 여름이 허락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간접적인 표현의 공간이다. 여름의 마법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는 데 있다. 올리버는 여름이 끝나면 떠날 것이고, 엘리오는 그것을 안다. 이 유한함이 여름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더 선명해진다. 구아다니노는 이 유한함을 배경으로 깔면서,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강도를 최대화한다. 여름이 허락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허락하지 않는 것들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욕망이 언어를 찾는 방식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가장 정교하게 표현되는 것은 욕망이 서서히 의식화되는 과정이다. 엘리오는 처음에 자신이 올리버에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는 짜증을 내고, 무시하려 하며, 다른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이 회피가 욕망을 처리하는 첫 번째 방식이다. 느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느낌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시도.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이 내면 과정을 외면화하는 데 탁월하다. 그는 대사보다 침묵으로, 행동보다 미세한 반응으로 엘리오의 내면을 전달한다. 올리버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장면에서 샬라메의 몸이 반응하는 방식, 올리버가 방을 나갈 때 그의 시선이 따라가는 방식. 이 작은 것들이 쌓여서 욕망의 전체 지형을 그린다. 언어로 말해지기 전의 감정이 어떻게 몸에 먼저 나타나는가를, 이 영화는 샬라메를 통해 보여준다. 욕망이 언어를 찾는 과정에서 엘리오가 마르지아(에스테르 가렐 분)와 맺는 관계도 중요하다. 그는 마르지아와 함께하면서 자신이 올리버에게 느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경험한다. 이 비교가 엘리오에게 자신의 욕망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마르지아와의 관계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올리버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것이 다른 종류의 강도와 색깔을 가진다는 것을 그 비교 속에서 알게 된다. 올리버가 처음으로 엘리오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 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엘리오의 신호를 읽으면서, 그것이 자신의 바람인지 실제인지를 확인하려 했다. 그 불확실성의 시간이 끝나고,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욕망이 공유되는 그 순간의 감각이 이 영화에서 가장 고요하고 가장 강렬한 형태로 표현된다. 큰 사건이 아니라, 조용한 확인으로.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본은 이 욕망의 언어화 과정에서 원작 소설의 내면 서술이 없는 상황에서도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다. 대신 환경과 음악, 그리고 두 배우의 몸이 내면을 말한다. 서퍼 로사가 흐를 때, 미스터리어스 스킨의 음악이 장면 위에 얹힐 때, 그 소리들이 말하는 것이 대사보다 더 많다. 욕망은 언어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이 영화는 그 언어 이전의 상태를 가장 정직하게 담는다.

상실이 성장이 되는 순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지막 파트는 여름이 끝나는 것, 즉 올리버가 떠나는 것을 담는다. 올리버는 기차역에서 엘리오와 작별하고, 기차는 떠난다. 엘리오는 차 안에서 울고, 집으로 돌아와 울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울음을 참는다. 이 상실이 이 영화의 마지막 행위이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행위다. 여름 동안 일어난 모든 것이 이 상실로 수렴되고, 그 상실이 엘리오라는 인간을 완성하는 재료가 된다. 엘리오의 아버지 팔만이(마이클 스털버그 분)가 아들에게 건네는 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그는 엘리오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가 경험한 것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우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을 부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 장면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통에 관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팔만이의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상실을 극복하라는 것이 아니다. 상실을 충분히 느끼라는 것이다. 슬픔을 서두르지 말고, 그 감정이 자신 안에서 완전히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라는 것. 이것이 상실이 성장이 되는 방식이다. 느낀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이 자신의 일부가 되도록 두는 것.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충분히 느낀 사람은 그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 앉아 그 열기를 바라본다. 이 장면은 수프린 수플리카 에의 음악과 함께 긴 시간 유지된다. 엘리오의 얼굴에 담기는 감정들, 슬픔, 회상, 수용,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안고 계속 존재하는 것. 이 마지막 이미지가 이 영화의 전부를 담는다. 여름은 끝났다. 올리버는 다른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엘리오는 여기 있다. 그 여름이 자신 안에 새겨진 채로. 상실이 성장이 되는 순간은 상실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상실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여름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변화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돌이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벽난로 앞에 앉은 그의 얼굴이 말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의 확인이다. 그 여름은 지나갔지만, 그 여름은 엘리오 안에 남아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사랑의 성취보다 사랑의 경험에 집중하는 영화다. 여름 한 철이 한 인간에게 무엇을 새기는가, 욕망이 어떻게 의식화되고 표현되는가, 그리고 상실이 어떻게 성장의 재료가 되는가를 이 영화는 느리고 감각적이고 정직하게 담는다. 티모시 샬라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연기이며, 그 장면 앞에서 관객은 자신의 어떤 여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 기억이 이 영화가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