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는 청룡영화상 감독상,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병헌이 영탁을, 박서준이 민성을, 박보영이 명화를 연기하며, 384만 관객을 동원했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아파트를 배경으로 입주민들이 외부인을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재난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말하는 것은 위기 앞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변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타인을 배제할 때 스스로를 어떻게 정당화하는가라는 훨씬 불편한 질문이다.

황궁아파트라는 세계의 논리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황궁아파트는 재난 영화의 생존 공간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 이 건물만 살아남았다는 설정이 단순한 재난 서사의 장치가 아니라, 한국에서 아파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자산이자 신분이자 공동체의 경계인 아파트. 그 상징성이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과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가가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이다. 황궁아파트가 생존 공간이 되면서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것이 경계다. 아파트 주민과 외부인 사이의 구분. 이 구분이 처음에는 생존의 논리로 정당화된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모두를 수용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작동하는가가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이다. 관객이 그 논리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가를 직면하게 된다. 엄태화 감독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세계의 논리가 단계적으로 심화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외부인을 받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외부인을 적극적으로 쫓아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내부에서도 배제와 폭력이 시작된다. 이 단계적 심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이 영화 연출의 가장 중요한 성취이자 가장 불편한 요소다. 어느 단계에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황궁아파트라는 세계의 논리가 한국적 맥락에서 읽힐 때 가장 날카로워진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아파트 중심의 주거 문화, 그리고 같은 단지 주민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 설정이 낯설지 않다는 것. 재난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평소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렸을 뿐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다. 황궁아파트라는 세계의 논리에 대한 가장 완성된 표현은 주민들이 자신들의 규칙을 민주적 합의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다수결로 결정하고, 회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며,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그 민주적 절차의 결과가 배제와 폭력이라는 것.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통찰이다.
영탁이라는 인물의 탄생과 붕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이병헌이 연기하는 영탁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가장 복잡한 존재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파트 주민이었고, 이웃이었으며, 특별한 능력이나 권위가 없었다. 그러나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이 그를 지도자로 만든다. 이 탄생의 과정이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탐구다. 이병헌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는 영탁을 처음부터 악당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영탁이 처음 보여주는 것들, 즉 솔직함, 결단력,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나서는 용기가 그를 지도자로 만드는 이유가 납득된다. 이 납득이 나중에 그가 보여주는 것들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좋은 면들이 어떻게 나쁜 것들을 위한 토대가 되는가. 영탁이라는 인물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가 가진 비밀이다. 그는 실제로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니다. 이 사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이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주제적 핵심이다. 배제하는 자가 실은 배제되어야 할 자라는 역설. 자신이 만든 규칙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것. 이 역설이 영탁이라는 인물을 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존재로 만든다. 영탁의 붕괴가 진행되는 방식이 가장 섬세하게 담기는 것은 그가 스스로도 믿게 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거짓으로 시작했던 것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영탁이 황궁아파트 주민으로서의 자아를 내면화하면서, 자신이 만든 규칙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가 된다. 이 자기 기만의 과정이 이병헌의 연기를 통해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된다. 영탁이라는 인물의 탄생과 붕괴가 완성되는 것은 그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가 만든 세계의 논리가 그 자신에게 적용될 때, 그 논리가 얼마나 잔혹하게 작동하는가. 이 순간이 황궁아파트라는 세계의 논리가 가진 본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배제의 논리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삼킨다.
우리가 배제하는 방식에 대하여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박서준이 연기하는 민성과 박보영이 연기하는 명화의 관계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시험대다. 민성은 황궁아파트 주민으로서 공동체의 논리를 따른다. 명화는 그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방향을 보는 방식이 배제의 논리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의 두 가지 가능성을 담는다. 박서준의 민성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관객의 대리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겁쟁이이고,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하며,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개입하지 못한다. 이 평범함이 민성을 관객과 가장 가까운 인물로 만든다. 우리가 민성의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이유다. 박보영의 명화는 도덕적 명확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배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말하며, 행동으로 저항하려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명화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명화의 저항이 쉽지 않고, 그 저항이 항상 효과적이지 않으며, 그녀도 두려움을 느낀다. 이 현실적인 묘사가 명화라는 인물을 단순한 도덕적 승리자가 아닌 인간으로 만든다. 우리가 배제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그 배제가 점진적이라는 것이다. 한 번의 결정으로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묵인들이 쌓여서 거대한 폭력이 된다. 민성이 처음에 개입하지 않았던 그 순간들이 나중에 더 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배제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 영화의 가장 완성된 표현은 결말에서다. 황궁아파트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무엇을 마주하는가. 이 결말이 희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절망만도 아니다. 배제의 논리가 스스로를 무너뜨린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 그 계속됨이 이 영화가 가장 조용하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선택해야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의 형식을 빌려 한국 사회의 가장 불편한 질문을 묻는다. 황궁아파트라는 세계의 논리, 영탁이라는 인물의 탄생과 붕괴, 그리고 우리가 배제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가 엄태화 감독의 연출과 이병헌의 연기로 완성된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황궁아파트는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