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필립스 감독의 2024년 작품 조커: 폴리 아 되는 2019년 조커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스스로 허물어버린 속편이다.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가 출연하며 뮤지컬 형식을 도입했지만, 그 실험은 설득력보다 혼란을 더 많이 남겼다. 전작이 조커라는 캐릭터에 부여한 무게와 공명을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해체하려 했으나, 그 해체가 예술적 용기인지 서사적 실패인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된다. 2026년 현재, 이 영화는 메가 프랜차이즈 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상업적 실패 사례이자, 관객의 기대와 창작자의 의도가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로 기록된다.

기대를 배반한 형식 실험 — 뮤지컬은 왜 작동하지 않는가
전작 조커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적 소외와 광기의 탄생을 그렸다. 그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졌던 이유는 명확했다. 아서의 고통이 현실적이었고, 그의 변화에 내적 논리가 있었으며, 관객은 그 논리를 따라가며 불편한 공감을 느꼈다. 폴리 아 되는 그 기반 위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장르 변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아서의 내면 환상을 뮤지컬로 표현하면서, 현실과 환상을 교차하는 구조를 선택한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아서에게 조커는 하나의 환상이며, 뮤지컬은 그 환상의 시각적 언어라는 것. 그러나 실제 영화에서 이 구조는 의도한 만큼 작동하지 않는다. 뮤지컬 장면들이 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삽입된 느낌을 주며, 현실 장면과의 리듬이 맞지 않아 관객을 이야기 밖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전작의 리듬이 단 하나의 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긴장감을 쌓아갔다면, 폴리 아 되는 두 톤 사이를 오가다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영화가 아서 플렉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끝까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조커라는 페르소나를 해체하려는 것인지, 그것을 애도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를 비판하려는 것인지. 이 영화는 여러 방향을 동시에 가리키다가 어느 하나도 완성하지 못한 채 끝난다. 재판이라는 설정은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였으나, 그 재판이 서사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다. 법정 장면들은 길고 반복적이며, 아서의 선택이 갖는 무게감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전작이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오래 안고 가게 만들었다면, 폴리 아 되는 질문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관객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조차 모호한 채로 극장을 나서게 만든다.
뮤지컬이 끝나고 현실 법정으로 돌아올 때마다 발생하는 서사적 단절이, 이 영화의 리듬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가장 큰 구조적 결함이다. 이 결함이 쌓일수록 관객은 아서를 따라가기보다 이 영화의 선택을 의심하게 되고, 그 의심이 생기는 순간 이 영화는 이미 중요한 것을 잃은 것이다. 어떤 형식 실험이든 관객과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행해져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이 영화는 너무 쉽게 포기했다. 뮤지컬이라는 선택이 이 영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강점마저 희석시켰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아이러니한 결과다. 조커의 내면을 보여주는 방식이 오히려 조커를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인물로 만들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역설적인 실패다. 형식 실험과 서사적 완성도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한 것이 이 영화가 넘어야 했던 가장 높은 벽이었고, 이 영화는 그 벽 앞에서 멈춰버렸다. 관객이 원한 것은 더 복잡한 아서가 아니라, 아서에 대해 더 명확한 무언가였다.
두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은 이야기 — 피닉스와 가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헌신적이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헌신이 이 영화의 문제를 가리지는 못한다. 피닉스는 아서를 조커라는 페르소나에서 이탈하는 인물로 표현하려 하지만, 그 이탈의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왜 지금, 왜 이 시점에 아서가 조커를 포기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이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전작에서 아서가 조커가 되는 과정은 내적 필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아서가 조커를 포기하는 과정은 그 내적 필연성이 충분히 구축되지 못한 채 진행된다. 피닉스가 이 역할에 쏟아붓는 에너지가 오히려 이 영화의 서사적 공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 공백은 피닉스의 연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채워지지 않는 서사의 구멍이다.
레이디 가가의 할리 퀸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문부호다. 가가의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할리라는 캐릭터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모호하다. 그녀는 아서를 사랑하는가, 조커를 사랑하는가. 이 모호함이 의도된 것이라면 그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고, 의도되지 않은 것이라면 캐릭터 구축의 실패다. 뮤지컬 장면에서의 가가는 인상적이지만, 뮤지컬 외의 장면에서 할리는 이 이야기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두 주연이 함께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순간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강렬함이 서사적 논리 위에서 성립하지 않을 때, 그것은 감정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 영화는 두 훌륭한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끝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피닉스와 가가가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실제로 만들어낸 것 사이의 간극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아쉬움이다. 두 배우가 받아든 시나리오가 그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남는다. 할리라는 캐릭터가 아서가 아닌 조커를 사랑하는 존재라면, 그 사랑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는지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어야 했다. 그 가능성을 이 영화는 건드리기만 하고 놓쳐버렸다. 두 배우 모두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들의 재능이 이 영화에서 완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오래 남는 아쉬움이다.
전작의 그림자를 넘지 못한 속편 — 2026년, 이 영화의 위치
조커: 폴리 아 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전작은 독립적으로 완결된 이야기였다. 조커의 탄생이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서사를 이루고 있었으며, 속편이 필요하지 않았다. 폴리 아 되는 그 완결된 이야기를 억지로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전작이 가졌던 힘을 오히려 희석시킨다. 아서 플렉의 결말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보면, 토드 필립스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 수 있다. 조커라는 신화를 해체하려는 시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해체를 위해 선택한 방법들이 유효하지 않았다. 뮤지컬 형식은 아서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선택되었지만, 그 도구가 이야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한다. 뮤지컬 시퀀스들이 끝날 때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고, 관객은 다시 서사로 돌아오기 위해 추가적인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것이 의도된 소외 효과라면, 그 효과가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
상업적으로 이 영화는 전작 대비 압도적인 실패를 기록했다. 그 실패가 단순히 관객의 몰이해 때문인지, 아니면 이 영화 자체의 서사적 실패 때문인지를 2026년 현재에도 논쟁은 계속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영화는 전작이 구축한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내린 결말이, 이 영화가 남긴 가장 큰 아쉬움이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 영화를 바라볼수록, 전작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었는지가 역설적으로 더욱 선명해진다. 폴리 아 되는 전작의 그림자 아래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 그림자와 싸우다 지쳐버린 영화다.
조커를 사랑했던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떠났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실패를 가장 단순하게 요약하는 방식이다. 속편이 전작의 유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가장 반면교사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이 영화는 영화사에 남을 것이다. 전작이 조커의 탄생을 필연으로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조커의 소멸을 우연으로 만들었다. 그 차이가 이 두 영화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다. 필연이 우연에 의해 덮이는 순간, 전작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 남긴 가장 씁쓸한 감각이다. 토드 필립스가 이 영화로 무엇을 증명하려 했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용감한 실패다. 전작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 시도는 이해할 수 있고, 그 용기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용기가 서사적 설득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뮤지컬이라는 형식, 조커 신화의 해체, 아서 플렉의 종결. 이 영화가 시도한 것들은 흥미롭지만, 그 시도들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수렴하지 못한 채 끝난다. 피닉스와 가가는 충분히 헌신했다. 이 영화가 그 헌신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비극이다. 조커라는 이름이 어떻게 한 인간을 소진시키는지를 이 영화는 말하려 했다. 그 말이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것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