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부(2024)는 2022년 153만 관객에 그친 1부의 아픔을 딛고 2024년 1월 개봉한 완결편이다. 류준열이 무륵을, 김태리가 이안을, 김우빈이 썬더를 연기하며 이하늬와 진선규가 새로 합류했다. 1, 2부 합산 297만 관객으로 730억 원의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한 흥행 참패로 기록되었지만, 2부 자체에 대한 평가는 1부보다 분명히 높다. 1부가 깔아둔 떡밥들이 회수되고, 각 캐릭터들의 매력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으며, 고려와 현대와 미래를 넘나드는 최동훈의 상상이 가장 완성된 형태를 갖추는 것이 2부다. 실패한 프로젝트이지만, 그 실패 안에 진심이 있는 영화다.

1부가 깔아둔 것들의 완성
외계+인 2부를 이야기할 때 1부를 피할 수 없다. 이 두 편은 애초에 하나의 영화를 둘로 나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이 프로젝트 전체를 어렵게 만든 원인이었지만, 동시에 2부를 경험하는 방식을 독특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1부에서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2부에서 맞물리는 순간들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쾌감의 원천이다. 1부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세계관의 밀도였다. 고려시대의 도사들, 현대의 외계인 교도관, 시간을 가로지르는 신검, 인간 몸속에 갇힌 외계인 죄수. 이 요소들이 1부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쌓였다. 2부는 그 축적된 것들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는다. 1부에서 배치된 캐릭터들의 행동 동기가 드디어 선명해지고, 각 세계관 사이의 연결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최동훈 감독의 연출이 2부에서 1부보다 유연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세계관을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캐릭터들을 뛰어놀게 둘 수 있다. 류준열의 무륵이 자신의 몸속 존재와 마주하는 과정, 김태리의 이안이 미래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방식, 김우빈의 썬더가 드디어 자신의 몫을 하는 장면들. 이 순간들이 1부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1부가 깔아둔 것들의 완성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유효한 순간은 무륵의 정체가 밝혀질 때다. 이 반전이 효과적인 이유는 그것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1부부터 준비된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잘 설계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놓이는 순간의 만족감.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면이 이 순간 주변에 몰려있다. 1부가 깔아둔 것들이 완성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서사적 성취지만, 동시에 가장 큰 한계이기도 하다. 2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1부 없이는 경험되지 않는 영화다. 이 의존성이 극장 흥행에서 가장 직접적인 장벽이 되었다. 1부를 본 관객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고, 그 관객들만으로는 2부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고려와 현대가 만나는 방식
외계+인 2부에서 가장 독창적인 요소는 고려와 현대라는 두 시공간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이다. 한국 영화에서 이 조합이 이렇게 대규모로 시도된 적이 없었다. 고려시대의 무협 미학과 현대의 SF 미학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시각적 언어를 구성한다. 그 언어가 항상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 거칠음 안에 진짜 상상력이 있다. 고려 파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사들의 설계다. 염정아의 흑설과 조우진의 청운이 만들어내는 콤비 호흡이 이 파트의 에너지를 책임진다. 특히 조우진의 청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코미디와 액션과 감정을 동시에 소화하는 방식이 이 캐릭터를 단순한 조연 이상으로 만든다. 무협이라는 장르의 문법 안에서 현대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살아있다. 현대 파트는 이하늬가 연기하는 민개인이 새롭게 이 세계에 합류하면서 관객의 시선 역할을 맡는다. 외계인의 존재를 처음 마주하는 보통 사람의 반응이 이 파트에 현실적 무게를 부여한다. 이하늬의 연기가 이 캐릭터를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닌 실재하는 인물로 만든다는 점에서, 민개인의 합류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영리한 서사적 선택 중 하나다. 고려와 현대가 교차하는 편집이 이 영화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부분이다. 두 시공간의 리듬이 맞지 않을 때 관객의 몰입이 끊기고, 그 끊김이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두 시공간이 하나의 사건을 향해 수렴할 때, 그 수렴의 쾌감이 이 영화의 장르적 야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려와 현대가 만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실현되는 것은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다. 다른 시간대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한 시간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가 흐른다. 최동훈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벨벳에서 영감을 받아 선택했다는 이 음악이 그 장면에서 만들어내는 감정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의외의 울림을 갖는다.
최동훈이 감수한 모험의 결과
외계+인 2부를 이해하려면 최동훈이라는 감독의 맥락이 필요하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 이 필모그래피가 말하는 것은 최동훈이 한국 상업 영화에서 가장 안정적인 흥행 보증수표였다는 것이다. 외계+인은 그 감독이 처음으로 감수한 대규모 모험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이 실패했다. 모험이 실패했다는 것과 모험 자체가 가치 없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최동훈이 외계+인을 통해 시도한 것들, 즉 한국 장르 영화의 지평을 SF와 무협과 판타지의 결합으로 확장하려는 시도, 두 편에 걸친 거대 서사를 구축하려는 시도, 한국적 소재와 SF를 결합하려는 시도. 이것들이 상업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시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다. 2부가 1부보다 나은 완성도를 보인다는 것이 오히려 이 프로젝트의 비극을 선명하게 만든다. 더 잘 만든 편이 더 적은 관객을 만났다. 1부의 실패가 2부의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한국 영화 역사에서 첫 번째로 시도된 1, 2부 분할 개봉이라는 전략이 내용보다 먼저 무너진 셈이다. 형식적 실험이 얼마나 큰 위험을 내포하는가를 이 프로젝트는 가장 비싼 수업료를 내고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만약 1부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이다. 2부의 내용적 완성도를 감안했을 때, 1부의 관객이 충분했다면 이 이야기가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흥행 성적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얼마나 왜곡하는가를 이 시리즈가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최동훈이 감수한 모험의 결과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하게 읽히는 것은 이 실패가 그의 다음 행보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흥행 불패 감독이 처음으로 대규모 실패를 경험한 뒤 어디로 가는가. 한국 영화에서 장르적 확장의 시도가 이런 결과를 낳을 때 다음 시도는 얼마나 더 어려워지는가. 외계+인이 남긴 질문이 그 영화 자체보다 오래 이어진다.
외계+인 2부는 잘 만들어졌지만 보여지지 못한 영화다. 1부가 깔아둔 것들의 완성, 고려와 현대가 만나는 방식, 그리고 최동훈이 감수한 모험의 결과가 류준열, 김태리, 김우빈, 이하늬, 진선규의 앙상블로 구현된다. 흥행 실패라는 결과가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In Dreams가 흐르는 마지막 이별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거대한 모험이 완전히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전해진다. 한국 영화의 장르적 확장을 꿈꿨던 최동훈의 시도가 언젠가 다시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