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엘비스 리뷰 (무대가 그를 만든 것인가, 톰 파커라는 그림자, 로큰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

by tae11 2026. 6. 8.

바즈 루어만 감독의 엘비스(2022)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틴 버틀러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버틀러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톰 행크스가 매니저 톰 파커 대령을, 올리비아 더용이 프리실라를 연기한다. 멤피스의 무명 가수가 로큰롤의 제왕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 정점에서 무너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는 이 영화는 전기 영화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바즈 루어만 특유의 과잉된 시각적 언어로 완성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떤 음악을 했는가보다, 그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가 그것을 소유했는가를 이 영화는 더 날카롭게 묻는다.

엘비스 포스터

무대가 그를 만든 것인가

엘비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오스틴 버틀러 분)가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는 무엇을 할지 모른다. 그냥 음악에 반응하는 몸이 있을 뿐이다. 그 몸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관중이 반응한다. 이 첫 번째 무대 경험이 이 영화에서 엘비스라는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시작점이다. 그가 무대를 만든 것인지, 무대가 그를 만든 것인지를 이 영화는 처음부터 질문한다. 바즈 루어만의 연출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요소다. 화면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편집은 MTV 뮤직비디오처럼 빠르며, 색채는 과포화된 상태로 유지된다. 이 과잉이 이 영화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정당하다. 그러나 이 과잉이 엘비스라는 인물의 삶 자체를 반영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의 삶이 과잉이었고, 그의 음악이 과잉이었으며, 그의 무대가 과잉이었다. 루어만은 그 과잉을 형식으로 만든다. 오스틴 버틀러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완성된 부분이다. 그는 엘비스의 목소리, 움직임, 무대 위의 에너지를 흡수해 단순한 모방이 아닌 재창조를 해낸다. 특히 무대 위의 버틀러가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를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순간들이다. 엘비스가 처음 허리를 흔들었을 때 관중이 폭발하는 장면부터 라스베이거스 만년 공연까지, 버틀러는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몸으로 담는다. 이 역할을 위해 버틀러가 2년 가까이 준비했다는 사실이 화면 위에서 느껴진다. 무대가 그를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게 표현되는 것은 엘비스가 라스베이거스에 묶이는 과정이다. 톰 파커의 계약에 의해 그는 세계 투어를 할 수 없게 되고, 같은 도시의 같은 무대에서 수년을 보낸다. 무대가 그를 만들었지만 그 무대가 동시에 그를 가두는 공간이 된다. 자유를 주었던 것이 감옥이 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설이다. 그리고 그 감옥 안에서 그는 약물에 의존하고, 몸이 무너지며, 예전의 자신을 잃어간다. 무대가 그를 만든 것인가에 대한 이 영화의 가장 완성된 답은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나온다. 이미 몸이 무너지고 있는 엘비스가 무대에 선다. 그러나 음악이 시작되면 무언가가 돌아온다. 무대 위의 그가 일상의 그보다 더 살아있다는 것. 그것이 무대가 그에게 준 것이고, 동시에 무대가 그에게서 빼앗은 것의 전부이기도 하다. 무대가 없었다면 그는 엘비스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빨리 소진되었다.

톰 파커라는 그림자

엘비스에서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 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서사적 선택이다. 죽어가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파커의 독백이 이 영화의 액자 구조를 만든다. 이 선택이 이 영화를 단순한 엘비스 찬가가 아니라 착취와 공생의 이야기로 만드는 방식이다. 파커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그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이 얼마나 자기기만적인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다. 톰 행크스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다. 두꺼운 분장과 억양으로 만들어진 파커는 행크스가 평소에 보여주는 연기와 완전히 다르다. 이 낯섦이 불편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 낯섦이 파커라는 인물의 본질을 담는 방식이기도 하다. 파커는 실제로 네덜란드 출신의 불법 이민자였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평생을 살았다. 행크스의 과장된 연기가 그 감춤의 과장을 반영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포장하고 재구성하는 인물의 속성을 표면적으로 드러낸다. 파커가 엘비스를 어떻게 이용했는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고발이다. 엘비스의 수익 절반을 가져가는 계약, 해외 공연을 막은 것, 그리고 엘비스가 약물에 빠져들 때 그것을 묵인하거나 조장한 것. 이 착취의 구조가 이 영화에서 엘비스의 비극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파커가 해외 공연을 막은 이유가 자신의 불법 체류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였다는 것이 이 착취를 더 씁쓸하게 만드는 사실이다. 파커라는 그림자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하게 표현되는 것은 그가 엘비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파커 없이 엘비스가 그 높이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착취자가 동시에 가능하게 한 사람이었다는 것. 이 역설이 파커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당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이 영화에서 스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탐구다. 재능을 발견하는 사람과 그것을 착취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 톰 파커라는 그림자가 이 영화에서 완성되는 방식은 엘비스가 죽은 뒤에도 파커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키운 스타를 소모하고, 그 스타가 사라진 뒤에도 자신은 남는다. 이 결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쓴 맛을 남기는 이유는, 그것이 엘비스 프레슬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사람이 소진되는 동안, 그 재능을 관리하는 사람은 살아남는다.

로큰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

엘비스에서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이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흡수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탐구다. 그가 자라난 멤피스의 흑인 교회 음악, 블루스, 그리고 리듬 앤 블루스가 그의 몸 안으로 들어와 로큰롤이 되는 과정. 이 영화는 그 과정을 가장 감각적으로 담는다. 어린 엘비스가 흑인 교회 앞에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느끼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그 출발점이다. 로큰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엘비스의 첫 무대들이 일으킨 반응들이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에서 백인 청년이 허리를 흔들며 흑인 음악을 부를 때, 그것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문화적 도발이 된다. 부모 세대가 혐오한 것을 자녀 세대가 열광했다. 이 세대 간 충돌이 이 영화에서 로큰롤이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비스의 허리 춤이 텔레비전 방송에서 상반신만 방영된 일화가 그 도발의 강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켈빈 해리슨 주니어가 연기하는 B.B. 킹과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층위를 담는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에서 무엇을 가져갔는가, 그리고 그 가져감이 착취인가 영향인가. 이 질문이 이 영화에서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주류에 전달한 것이 그 음악에 대한 공헌인가, 아니면 원래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착취인가. 이 영화는 그 복잡성을 직면하면서도 엘비스를 비난하거나 무조건 옹호하지 않는다. 로큰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 대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음악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엘비스가 인종차별이 공고하던 시대에 흑인 음악을 부르고, 흑인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그 문화를 존중했다는 것이 당시에 얼마나 급진적인 행위였는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의 음악이 의도적인 정치적 발언은 아니었지만, 그 음악이 만들어낸 문화적 충격이 결과적으로 정치적이었다. 음악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항상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다. 로큰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완성되는 것은 라스베이거스 공연 장면들이다. 이미 전설이 된 엘비스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버틀러가 만들어내는 그 에너지가 엘비스의 음악이 왜 지금도 살아있는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몸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음악 앞에서 무언가가 켜지는 사람. 로큰롤이 그를 만들었고, 그가 로큰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음악은 그가 죽은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엘비스는 과잉의 영화다. 그러나 그 과잉이 이 영화의 결함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영화의 언어이기도 하다. 무대가 그를 만든 것인가, 톰 파커라는 그림자, 그리고 로큰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바즈 루어만의 폭발적인 연출과 오스틴 버틀러의 완전한 헌신으로 완성된다. 버틀러가 만들어내는 엘비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한 인간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살고 소진되는가를 온몸으로 담았기 때문이다. 발 없는 새처럼 날다가 땅에 닿는 순간 죽는다는 엘비스의 마지막 대사가 이 영화의 가장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