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형제 감독의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22편의 대단원이자, 흥행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 중 하나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스냅으로 우주 인구 절반이 사라진 이후 5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살아남은 영웅들이 과거로 돌아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이야기를 담는다. 3시간 2분의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는 단순한 슈퍼히어로 액션을 넘어, 상실과 슬픔, 희망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다. 10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서, 이 영화는 가능한 한 가장 성실하고 감동적인 답을 내놓았다.

패배한 영웅들의 5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가장 용감한 선택은 첫 번째 시간대에 있다. 영화는 타노스의 스냅이 완성된 직후 살아남은 영웅들이 타노스를 찾아가 스톤을 되찾으려 하지만 실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타노스는 이미 스톤을 파괴했다.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리고 영화는 5년을 건너뛴다. 이 건너뜀이 이 영화를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 놓는다. 영웅들이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패배는 5년 동안 지속되었다. 5년 후의 세계는 어둡다. 절반의 인구가 사라진 지구는 물리적으로 회복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상실 속에 있다. 남은 어벤져스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실을 감당하고 있다.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 분)는 팀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일하고,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생존자들을 위한 지지 모임을 이끈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분)는 뉴 아스가르드에서 알코올과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며 무너졌고,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 분)은 가족을 잃은 뒤 복수의 킬러로 변했다. 이 캐릭터들의 5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승리의 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영웅들은 보통 실패하더라도 즉각 일어선다. 그러나 엔드게임의 영웅들은 5년을 그냥 살았다. 상실과 함께, 죄책감과 함께, 그리고 무력함과 함께. 이 5년이 이 영화에 감정적 무게를 부여한다. 우리가 이 영웅들의 희생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패배를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토르의 변화는 이 5년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다. 한때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던 신이 과체중에 알코올에 의존하며 게임 속에 은둔한다. 이 변화를 두고 영화가 코미디 소재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 토르의 모습이 가장 인간적인 패배의 형태다. 자신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자책이 그를 무너뜨렸다. 그 무너짐이 과장되게 표현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감정은 진짜다. 헐크(마크 러팔로 분)는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는 배너와 헐크의 갈등을 해소하고, 두 자아를 통합한 스마트 헐크로 등장한다. 이 변화는 영화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사적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헐크가 5년 동안 자신의 내면 갈등을 해결했다는 사실은, 패배 이후에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이다. 영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5년을 살아냈고, 그 살아냄 자체가 이 영화의 첫 번째 행위다.
시간을 돌리는 것의 대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중심 메커니즘은 타임 트래블이다. 앤트맨(폴 러드 분)이 양자 영역을 통해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영웅들은 과거의 시점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현재에서 스냅을 역전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설정은 필연적으로 타임 트래블의 논리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는 이것을 회피하는 대신 직접 다루면서, 자신들의 타임 트래블은 특정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규정한다. 과거 시점 방문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팬 서비스와 서사적 필요가 가장 조화롭게 결합된 부분이다. 2012년 뉴욕 전투 장면, 2013년 아스가르드, 1970년의 쉴드 기지. 이 과거 장면들은 단순히 예전 영화들의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들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게 만든다. 특히 스티브가 2012년의 자신과 마주치는 장면은 유머와 긴장이 공존하면서, 시간 여행 플롯의 가장 영리한 활용이 된다. 시간을 돌리는 것의 대가는 소울 스톤을 둘러싼 장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제기된다.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해야 한다. 나타샤와 클린트가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함께 과거로 갔을 때, 두 사람은 서로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를 살리려는 두 사람의 싸움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감정적 장면이다. 누가 더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 싸우는 이 장면에서, 오랜 우정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나타샤의 희생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순간 중 하나다. 그녀는 블랙 위도우 단독 영화를 아직 가지지 않은 채로 이 영화에서 사라진다. 많은 팬들이 이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서사적 관점에서 이 희생의 논리는 이해할 수 있다. 나타샤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의 역할을 해왔다. 과거가 없는 사람이 미래를 위해 자신을 내놓는다는 것이, 그녀라는 캐릭터의 완성이기도 하다. 헐크가 스냅을 역전시키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기대의 배신이 가장 영리하게 활용된 순간이다. 관객은 다음 편의 어벤져스가 스냅을 역전시키는 역할을 맡으리라 기대하지만, 그것은 헐크가 한다. 그리고 그 역전은 극적인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는 행위로 처리된다. 시간을 돌리는 것의 대가는 누군가가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의 실제 무게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분산되어 지불된다.
아이언맨이라는 이름의 마침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감정적 정점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의 마지막 순간에 있다. 10년 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시작하고 이끌어온 이 캐릭터의 마지막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수렴하는 지점이다. 토니 스타크는 이미 5년 전에 전쟁을 끝냈다. 그는 페퍼(기네스 팰트로 분)와 결혼하고 딸 모건을 낳았으며,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전쟁에 나선다. 토니가 타임 트래블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은 이 캐릭터의 본질을 압축한다. 스티브와 나타샤가 포기한 문제를, 그는 딸 모건이 잠든 밤에 혼자 풀어낸다. 그리고 아침에 스티브에게 전화한다.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토니는 알고 있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 딸과 아내와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전화를 건다. 이것이 아이언맨의 성장이다. 처음에는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이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걸고 세상을 위해 싸운다. 최후의 전투에서 토니가 스톤을 빼앗아 스냅을 행하는 장면은, 이 10년 서사의 가장 완벽한 마침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리며 이것이 그 하나의 가능성임을 암시할 때, 토니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는 행동한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 대사는 이 시리즈 첫 영화에서 그가 세상에 선언했던 것의 완성이다. 10년 전에는 자신이 아이언맨이라고 선언했다. 이번에는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토니 스타크의 장례식 장면은 이 시리즈를 통해 등장했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모이는 순간이다. 이 장면을 단순한 팬 서비스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은 다른 삶들과 연결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연결이 10년 동안 스크린을 통해 쌓여왔기 때문에, 이 장면의 감정은 인공적이지 않다. 진짜 상실처럼 느껴진다. 스티브 로저스의 마지막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마침표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페기 카터와 함께 삶을 산다. 이 선택은 논쟁을 낳았다. 그것이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의 본질에 맞는 결말인가.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스티브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순간이다. 항상 세상을 위해 희생해온 사람이, 마지막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늙은 스티브가 샘에게 방패를 건네는 장면에서,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마침표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점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타임 트래블의 논리적 허점, 일부 캐릭터의 서사적 아쉬움, 그리고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하려는 것, 즉 10년 동안 관객이 사랑해온 캐릭터들에게 가능한 한 정직하고 감동적인 마침표를 찍는 것은 성공했다. 토니 스타크의 마지막 대사가 울리는 순간, 그 10년의 무게가 한꺼번에 느껴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