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는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류성희 미술감독이 벌칸상을 수상했으며, 청룡영화상에서 김민희가 여우주연상, 김태리가 신인여우상을 나란히 수상한 작품이다.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 최초의 기록을 세웠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95%를 기록했다. 김민희가 히데코를, 김태리가 숙희를, 하정우가 백작을, 조진웅이 코우즈키를 연기하며 428만 관객을 동원했다.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긴 이 영화는 사기꾼들이 꾸민 계략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속임과 역속임이 중첩되는 서사 구조 안에서 두 여성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층위다.

세 개의 시선이 하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방식
아가씨의 가장 독창적인 서사 구조는 같은 이야기가 세 번 다르게 서술된다는 것이다. 1부는 숙희의 시선으로, 2부는 히데코의 시선으로, 3부는 두 이야기가 합일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로맨스나 스릴러가 아닌 관점의 영화로 만든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같은 장면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1부에서 관객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2부에서 뒤집힌다. 숙희가 히데코를 관찰할 때 보지 못했던 것들, 히데코가 실제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드러나면서 이미 본 장면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재독의 경험이 가장 영리하고 가장 즐거운 부분이다. 같은 사건이 다른 시선으로 담길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증명한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에서 이 구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미장센의 정밀함이다. 1부의 어떤 장면이 2부에서 다시 등장할 때,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가 달라지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난다. 이 시각적 재구성이 단순한 서술 구조의 전환이 아니라 영화적 언어 자체로 이야기를 다시 쓰는 방식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칸에서 벌칸상을 받은 것이 이 영화의 공간이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되었는가를 말해준다. 1부와 2부가 보여주는 간극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적 발언이기도 하다. 하녀가 아가씨를 바라보는 시선과 아가씨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과 자신이 아는 자신 사이의 간격. 이 간격이 두 인물 모두에게 존재하며, 그 간격이 좁혀지는 과정이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는 방식과 겹친다. 세 개의 시선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속이고 누가 속는가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인물이 어느 순간 속이면서 동시에 속는다. 그 겹침이 단순한 속임수 서사 이상으로 이 영화를 만드는 핵심이다.
히데코와 숙희가 선택하는 것들
아가씨에서 김민희의 히데코와 김태리의 숙희가 만들어내는 것이 감정적 중심이다.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과 신인여우상을 한 영화의 두 배우가 나란히 수상한 것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의 연기가 얼마나 완전했는가를 말해준다. 김민희의 히데코가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1부에서 그녀는 수동적으로 보인다. 코우즈키 이모부의 통제 아래 매일 책을 읽으며 갇혀있는 사람. 그러나 2부에서 히데코의 시선으로 같은 장면을 다시 보면, 그녀가 처음부터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김민희는 이 이중성을 1부 내내 감추면서 동시에 히데코의 고독과 취약함을 진짜로 만들어내는 연기를 한다. 그 감춤과 드러냄 사이의 균형이 이 배우의 연기가 이 역할에서 달성한 것이다. 김태리의 숙희가 가장 에너지 있는 존재다. 신인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지금 돌아보면 놀라운 일이다. 숙희가 히데코의 집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김태리는 숙희의 생존 본능과 점차 커지는 감정을 신체 전체로 표현한다. 말이 아닌 몸의 연기로 이 역할이 완성된다는 것이 신인여우상 이상의 성취다. 히데코와 숙희가 선택하는 것들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다. 숙희는 백작의 계략에 따라 히데코를 배신하기로 되어 있었다. 히데코는 그 계략을 알면서도 자신의 다른 탈출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각자의 계획을 수행하는 동안 그 계획과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감정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용하려는 의도로 가까워졌지만 그 가까움이 진짜가 되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적 전환이다. 계산으로 시작한 관계가 선택으로 변하는 그 지점. 어느 순간부터 숙희가 히데코를 배신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히데코가 숙희를 자신의 탈출에 포함시키기로 선택하는 것. 그 선택들이 쌓여 이 영화의 결말을 만든다.
박찬욱이 만드는 관능과 해방의 언어
아가씨에서 박찬욱의 시각적 언어가 가장 정교하게 작동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저택이라는 공간, 일본식 건축과 조선식 건축이 공존하는 코우즈키의 집, 그리고 그 집이 두 여성을 가두는 방식. 이 공간의 설계가 주제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억압의 공간이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카메라와 조명과 미술로 담긴다. 관능이 기능하는 방식이 박찬욱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연출적 선택이다.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에서 관능은 착취가 아니라 자율성의 표현으로 제시된다. 두 여성이 남성의 시선이 부재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관능이 갖는 의미다. 이 영화의 성적 묘사가 문제적이라는 시각과, 그것이 여성의 주체적 욕망을 담는 방식이라는 해석이 공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방의 언어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코우즈키의 공간을 탈출하는 장면이다. 오랫동안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어온 책들이 그 공간과 함께 남겨지는 방식, 두 여성이 그 공간을 등지고 나가는 방식. 이 장면이 가장 시각적으로 완성된 해방의 이미지다. 박찬욱이 세라 워터스의 원작을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긴 선택이 단순한 각색 이상의 의미를 만든다. 식민지 지배 아래 여성이 겪는 이중적 억압, 조선어와 일본어가 섞이는 언어적 혼종,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저항의 형태. 이 역사적 맥락이 원작에 없던 층위를 더한다. 코우즈키가 조선인이면서 일본 문화를 숭배하는 인물이라는 설정이 이 영화에서 식민지 시대 문화적 종속의 가장 기묘한 표현이다. 박찬욱이 만드는 관능과 해방의 언어가 완성되는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두 여성이 함께 있는 그 공간이 억압에서 벗어난 자리라는 것이 말 없이 전달된다. 로튼 토마토 95%,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그리고 전 세계 비평가들의 호평이 이 영화의 언어가 국경을 넘어 전달되었다는 것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다. 아가씨는 박찬욱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교한 작품이다. 세 개의 시선이 하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방식, 히데코와 숙희가 선택하는 것들, 그리고 박찬욱이 만드는 관능과 해방의 언어가 김민희와 김태리의 연기로 완성된다. 한국 영화 최초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이라는 기록이 성취를 가장 공식적으로 증명한다. 속임수로 시작해 선택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는, 두 여성이 마침내 자신의 것을 찾는 그 결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