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메이렐리스 감독의 시티 오브 갓(2002)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각색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리우데자네이루 시다지 지 데우스 빈민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는 빈민가에서 태어나 폭력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과, 그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화려하고 빠른 편집, 강렬한 색채, 그리고 논픽션적 충격이 결합된 이 영화는 폭력이 어떻게 구조가 되고, 그 구조 안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는다.

폭력이 공기가 되는 세계
시티 오브 갓에서 폭력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이다. 시다지 지 데우스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곳에 이미 폭력이 있고, 자라면서 폭력을 목격하며, 그 폭력이 삶의 논리가 된다. 이 환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이 영화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여준다. 처음부터 폭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빈곤과 방치, 그리고 제도의 부재가 폭력을 만들었고, 그 폭력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었다. 리틀 다이스(그 레이테이스 분)라는 캐릭터가 이 폭력의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폭력을 향한 욕구가 있었다. 그 욕구가 어디서 왔는가를 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욕구가 이 환경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보여준다. 빈민가에서 폭력은 권력을 얻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폭력이 논리가 된다. 페르난도 메이렐리스의 연출이 이 폭력의 세계를 담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적 선택이다. 그는 이 폭력을 아름답게 만든다. 화려한 색채, 빠른 편집,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폭력의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매혹적으로 만든다. 이 선택이 논쟁적이다. 폭력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그것을 찬양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시각적 언어가 이 영화에서 기능하는 방식이 더 복잡하다. 그 아름다움이 이 세계가 얼마나 유혹적인가를 표현하며, 동시에 그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한다. 폭력이 공기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아이들이 폭력에 입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총을 들고, 마약을 팔며, 폭력을 행사한다. 이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이유는 그 아이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그 외의 다른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아이들을 만들고, 그 환경이 폭력으로 가득할 때 아이들도 폭력으로 만들어진다. 폭력이 공기가 되는 세계에서 이 영화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리틀 다이스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의 개인적 선택인가, 아니면 그를 그렇게 만든 환경인가. 이 영화는 그 답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이 있지만,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조건이 있다. 시다지 지 데우스를 만든 것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적 통찰이다.
부스카페가 선택하는 것들
시티 오브 갓의 서술자이자 중심 인물인 부스카페(알렉산드르 호드리게스 분)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그는 시다지 지 데우스에서 태어났고, 그곳의 모든 것을 알며, 그 세계의 논리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그 세계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부스카페가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적 전환이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욕구가 처음에는 단순한 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 욕구가 그를 살아남게 하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 점차 드러난다. 카메라는 그에게 폭력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그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다.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 참여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부스카페의 선택이 이 영화에서 영웅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갈등한다. 총을 들고 싶은 순간이 있고, 그 세계의 논리가 더 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갈등이 그를 단순한 도덕적 승리자가 아닌 인간으로 만든다. 그가 폭력의 세계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계속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그의 여정을 통해 전달된다. 부스카페와 리틀 다이스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적 긴장을 만든다. 같은 공간에서 자랐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두 사람. 리틀 다이스가 성공할수록 부스카페는 더 위험해진다. 그 위험이 부스카페를 자신의 선택으로 계속 밀어붙이게 만든다. 다이스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그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 이 사이의 공간이 부스카페가 이 영화에서 살아가는 장소다. 부스카페가 선택하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환경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많은 것에 의존하는가도 보여준다. 부스카페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그의 의지 때문만이 아니다. 그를 지원하는 사람들, 우연한 기회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운이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선택은 가능하지만, 그 가능성의 조건이 불평등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통찰이다.
카메라가 말하는 것들
시티 오브 갓에서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다. 부스카페가 사진작가를 꿈꾼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서사적 장치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메타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폭력의 세계를 담는다. 그 담음이 어떤 책임을 갖는가. 폭력을 화면에 올리는 것이 그것을 폭로하는 것인가, 아니면 소비하게 만드는 것인가. 이 질문이 이 영화에서 카메라라는 소재를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제기된다. 세자르 샬론느의 촬영이 이 영화의 시각적 언어를 규정한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불안정한 움직임, 빠른 편집, 강렬한 색채 대비. 이 촬영 방식이 시다지 지 데우스의 에너지와 혼돈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감을 전달한다. 이 카메라가 이 세계를 낯설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 끌어들임이 이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카메라가 말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영화에서 실제 거주민들을 배우로 기용한 것이다. 전문 배우가 아닌 시다지 지 데우스 출신의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연기한다. 이 선택이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담는 것의 진실성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들이 연기하는 것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계이며, 그 앎이 화면 위에서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폭력이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캐스팅에 있다. 카메라가 말하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층위를 만드는 것은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을 때 일어난 일들이다. 이 영화는 시다지 지 데우스를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동시에 브라질의 빈민가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고착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딜레마가 이 영화에서 카메라라는 소재가 말하는 것의 가장 불편한 층위다. 담는다는 것이 해방인가,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착취인가. 카메라가 말하는 것들의 가장 완성된 표현은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부스카페가 신문사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 것을 보는 장면이다. 그는 리틀 다이스의 시체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이 신문에 실린다. 그러나 그 사진이 실린 신문은 그의 사진 대신 경찰의 사진을 표지로 사용한다. 이 순간이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말하는 것들의 한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는다. 진실을 담아도, 그 진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찍는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부스카페가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다.
시티 오브 갓은 불편하고 화려하며 충격적인 영화다. 폭력이 공기가 되는 세계, 그 안에서 부스카페가 선택하는 것들, 그리고 카메라가 말하는 것들이 페르난도 메이렐리스의 역동적인 연출과 실제 거주민들의 연기로 완성된다.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그 시각적 에너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에너지 아래에 있는 질문들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그 안에서 선택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을 담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들이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 영화 이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