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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리뷰 (9시간이 역사가 되는 방식, 전두광이라는 존재의 본질, 이태신이 지키려 한 것들)

by tae11 2026. 6. 10.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2023)은 1,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역대 31번째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황정민이 전두광을, 정우성이 이태신을, 이성민이 참모총장 정상호를 연기하며,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대상, 황정민의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의 9시간을 141분에 담은 이 영화는 결말이 이미 알려진 역사를 다루면서도, 너무 잘 만들어서 분노를 유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지 못한 봄에 대한 이야기라는 김성수 감독의 말이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설명이다.

서울의 봄 포스터

9시간이 역사가 되는 방식

서울의 봄의 가장 중요한 형식적 선택은 이 영화가 9시간을 실시간에 가깝게 담는다는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의 시간이 이 영화에서 압축되지 않고 긴장 상태로 유지된다. 그 긴장이 141분 동안 거의 풀리지 않는다. 이 선택이 이 영화를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닌 스릴러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결말을 알면서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참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9시간이 역사가 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탐구되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이루어진 선택들이다. 누군가는 반란에 가담하고, 누군가는 저항하며, 누군가는 침묵을 선택한다. 이 선택들이 개인의 도덕적 판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존의 계산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층위다. 옳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 그 침묵이 역사를 바꾼다. 김성수 감독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간과 시간을 긴장의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화 한 통, 명령 한 마디, 서명 하나가 이 영화에서 전투 장면만큼이나 긴장감을 만든다. 총이 발사되는 순간보다 총구가 겨누어지는 순간이 더 무서운 것처럼, 이 영화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들은 행동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정지 상태들이다. 그 정지가 이 9시간의 핵심이다. 9시간이 역사가 되는 방식에서 이 영화가 가장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은 관객이 이미 결말을 안다는 사실이다. 반란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에, 진압군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누군가 한 명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가정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붙는다. 이 가정이 이 영화의 긴장을 만드는 동시에, 이 영화가 끝난 뒤의 분노를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9시간이 역사가 되는 방식에 대한 이 영화의 가장 완성된 표현은 새벽이 밝아오는 마지막 장면이다. 반란이 성공하고, 권력이 이동하며, 서울에 오지 않은 봄이 확정된다. 그 확정의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거운 순간이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우리는 그 역사 이후의 세계에 살고 있다.

전두광이라는 존재의 본질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연기하는 전두광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실존 인물 전두환을 모델로 한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들이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선다. 황정민의 연기가 전두광을 단순한 악인이 아닌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위험한 존재로 만든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전두광이라는 인물이 가장 오래 남는 이유다. 전두광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그가 웃을 때다. 그는 자주 웃는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때, 누군가를 설득했을 때, 반란이 성공에 가까워질 때. 이 웃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요소다. 악이 음울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유쾌하고 친근하며 설득력 있는 얼굴을 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전두광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황정민이 이 역할을 위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악당 연기가 아니다. 그는 전두광 안에 있는 욕망, 확신,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담는다. 전두광은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역사의 필요에 응답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자기 정당화가 이 영화에서 전두광을 가장 무서운 존재로 만드는 핵심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전두광의 전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담기는 것은 그가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는 협박과 회유를 정밀하게 조합한다. 누군가에게는 약점을 건드리고, 누군가에게는 이익을 제시하며,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심는다. 이 전략이 9시간 동안 작동하면서 반란이 성공 쪽으로 기울어가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순간들을 만든다. 전두광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이 영화에서 완성되는 것은 그가 승리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가 가장 잘 만들어서 분노를 유발한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두광이 이기고, 역사가 그대로 흘렀다는 것. 그 사실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분노를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그 분노가 이 영화를 1,300만 명이 극장에서 경험한 이유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태신이 지키려 한 것들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이 연기하는 이태신은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이다. 그는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반란에 맞서 진압을 시도하는 인물이며, 이 영화에서 패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의 패배를 담는 방식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그리고 그 싸움이 실패했음에도 왜 의미 있는가를 이 영화는 가장 정직하게 담는다. 정우성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이태신을 완성한다. 그는 이태신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태신은 두려워하고, 분노하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간다. 이 좌절이 이 영화에서 이태신이라는 인물을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옳은 것을 하려는 사람이 옳지 않은 세계 안에서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태신이 지키려 한 것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그가 내리는 명령들이다.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상관에게 보고하며, 반란군과 대치하는 그 순간들에서 이태신이 지키려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직책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이고, 민주주의적 절차이며, 자신이 속한 체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대립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적 긴장을 만든다. 두 사람 모두 군인이고, 같은 체계 안에 있으며,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것이 완전히 다르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가를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해 같은 환경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드는가가 가장 선명하게 표현된다. 이태신이 지키려 한 것들이 이 영화에서 완성되는 방식은 그의 마지막 장면이다. 모든 것이 실패한 뒤, 그가 남은 자리에 있는 것. 이 영화에서 이태신이 패배하지만 굴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 마지막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었지만, 그가 지키려 한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오지 않은 봄이었지만, 봄이 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서울의 봄은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다. 그러나 그 앎이 이 영화의 긴장을 줄이지 않는다. 9시간이 역사가 되는 방식, 전두광이라는 존재의 본질, 그리고 이태신이 지키려 한 것들이 김성수 감독의 정밀한 연출과 황정민, 정우성의 연기로 완성된다. 1,300만 명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이유는 분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분노 안에 지금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오지 않은 봄을 기억하는 것이 지금의 봄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