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을 맡았으며, 애니 프루의 단편 소설을 래리 맥머트리와 다이앤 오사나가 각색했다. 1963년 와이오밍의 산에서 처음 만난 두 카우보이 에니스와 잭이 20년에 걸쳐 이어가는 관계를 담는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이지만 그 사랑이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형태라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산이 두 사람에게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슬픈 전제다.

산이 허락하는 것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며,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고 유일하게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장소다. 1963년 여름, 에니스(히스 레저 분)와 잭(제이크 질렌할 분)은 양 떼를 돌보기 위해 브로크백 마운틴에 올라간다. 그 산에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가까워지고, 처음으로 자신들이 느끼는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산이 허락하는 것들이 산 아래의 세계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비극의 구조다. 산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가 이 영화의 시각적 언어를 규정한다.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촬영이 담는 와이오밍의 산악 풍경이 광대하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두 사람이 그 공간에서 경험하는 자유와 공명한다. 산 아래의 세계, 즉 마을과 집과 가족이 있는 공간이 좁고 억압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대비되면서, 산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시각적으로 전달된다. 산이 허락하는 것들의 가장 중요한 층위는 두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에니스와 잭은 산 아래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산다. 에니스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카우보이로 일한다. 잭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다른 삶을 산다. 그러나 그 삶들이 그들이 진짜 누구인가를 담지 못한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안다. 브로크백 마운틴만이 그 진짜의 공간이었다. 이안 감독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산의 공간을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고립되어 있다. 두 사람이 그 공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동시에 그 자유가 그 공간 안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이 허락하는 것들이 산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라진다. 이 한계가 이 영화에서 산이라는 공간의 가장 슬픈 측면이다. 산이 허락하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두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20년에 걸쳐 달라지는 방식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그 경험이 무엇인지 두 사람 모두 이름 붙이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단순한 여름의 경험이 아니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잭은 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려 하고, 에니스는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긴장을 만든다.
두 사람이 살아낸 삶의 방식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와 잭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에니스는 두려움을 선택한다. 그는 어린 시절 게이 남성이 폭력으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고, 그 기억이 그를 평생 지배한다. 잭은 가능성을 선택한다. 그는 에니스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그것을 위한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 두 가지 방향이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완성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히스 레저의 에니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내면화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는 말이 없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레저는 이 모든 억압된 것들이 에니스의 몸 안에 있다는 것을 표정과 자세와 움직임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에서 레저의 연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말하는 것들보다 더 많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제이크 질렌할의 잭은 에니스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는 더 표현적이고, 더 직접적이며,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재회하는 장면에서 잭이 에니스를 끌어안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차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잭은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고, 에니스는 그 감정을 억누르고 싶어한다. 그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 전체를 만든다. 두 사람이 살아낸 삶의 방식이 각자의 결혼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에니스의 아내 알마(미셸 윌리엄스 분)는 에니스가 잭과 재회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다. 그 장면이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 영화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에니스와 알마의 관계가 변하는 방식이 그 목격이 그녀에게 무엇을 했는가를 담는다.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요소 중 하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살아낸 삶의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수렴되는 것은 그들이 결국 같은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잭이 원하는 것, 즉 함께 목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것이 에니스의 두려움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두려움이 에니스의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에니스의 어린 시절 기억을 통해 보여준다. 두 사람이 살아낸 삶의 방식은 그들이 태어난 세계가 부과한 조건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기는 것
브로크백 마운틴의 마지막 이미지는 에니스가 잭의 셔츠를 품고 있는 것이다. 잭이 죽은 뒤, 에니스는 잭의 부모를 찾아가고, 잭의 방에서 두 개의 셔츠가 서로를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두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완전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 셔츠들 안에 있다. 그 침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쌓이는가가 이 영화의 감정적 구조를 만든다. 에니스와 잭은 20년 동안 간헐적으로 만나면서도, 그 관계가 무엇인가를 완전히 말하지 않는다. 특히 에니스가 그렇다. 그는 잭이 함께 살자고 할 때마다 다른 이유를 댄다. 그 이유들이 변명이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지만, 에니스는 그 변명 너머의 진짜 두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이 말하지 않음이 20년에 걸쳐 축적된다. 잭이 죽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고 가장 중요한 서사적 요소다. 그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났는가가 이 영화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잭의 아내는 타이어 사고라고 말하지만, 에니스의 머릿속에서 그 죽음이 다르게 재현된다. 혐오 범죄로. 이 모호함이 이 영화에서 잭의 죽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에니스의 두려움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이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제한했는가를 이 죽음이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이 영화에서 에니스에게 남기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겁게 표현된다. 그는 딸의 결혼식 초대를 받고, 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혼자 트레일러에 서서 잭의 셔츠를 바라본다. 이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에서 에니스가 살아온 삶 전체의 무게를 담는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기는 것은 이 침묵과 이 셔츠와 이 혼자 있음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기는 것을 이 영화가 가장 보편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것들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할 수 없는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보편성이 이 영화를 특정한 정체성의 이야기 이상으로 만든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인간에게 무엇을 하는가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며, 그 답이 에니스의 마지막 모습 안에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사랑 영화이지만 그 사랑이 완성되지 못하는 영화다. 산이 허락하는 것들, 두 사람이 살아낸 삶의 방식, 그리고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기는 것이 이안의 연출과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로 완성된다. 이 영화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말하는 것들은 보편적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잭의 셔츠를 바라보는 에니스의 뒷모습이 그 질문의 가장 정직하고 가장 슬픈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