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2005)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한 테러 사건 이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테러리스트들을 암살하기 위해 비밀 작전팀을 구성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에릭 바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아란 힌즈, 마티외 아말릭, 에릭 카나가 출연하며, 토니 쿠시너와 에릭 로스의 각본이 이 영화의 도덕적 복잡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복수가 정의인가, 폭력이 폭력을 멈추는가, 그리고 국가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이 영화는 가장 불편하고 가장 정직하게 묻는다.

복수가 정의가 될 수 있는가
뮌헨은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이 이 질문 주위를 맴돈다.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뮌헨 테러에 대한 응답으로 비밀 암살 작전을 승인한다. 그 논리는 단순하다.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인들을 죽였으므로, 그들을 찾아 죽여야 한다는 것. 이 논리가 얼마나 강력하게 느껴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이 영화는 동시에 보여준다. 아브너(에릭 바나 분)가 이 작전을 이끄는 이유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그는 이 임무를 단순히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뮌헨에서 죽은 선수들의 이름을 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는 것이 의미 있다고 믿는다. 이 진심이 이 영화에서 복수와 정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하는 일이 실제로 옳은가의 질문이 아브너를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탐구된다. 스필버그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암살 장면들을 영웅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암살이 진행되는 방식이 지저분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항상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든다. 민간인이 휘말리고, 계획이 어긋나며, 팀원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이 복잡함이 복수가 실행될 때 그것이 얼마나 깔끔하지 않은가를 보여준다.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직접적인 답이다. 복수가 정의가 될 수 있는가의 질문이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하게 표현되는 것은 암살 대상들의 인간화를 통해서다. 이 영화는 표적들을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삶이 있으며, 자신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표적 중 한 명인 팔레스타인 작전 담당자 알리와 아브너가 우연히 같은 은신처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다. 적이 인간이 될 때, 복수는 더 복잡해진다. 복수가 정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 영화의 답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복수는 정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정의를 만들지는 않는다. 각각의 암살이 완성될 때마다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 표적들을 제거하지만 테러는 멈추지 않는다. 이 사실이 이 영화에서 복수의 논리가 갖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아브너가 치르는 것들
뮌헨의 심리적 중심은 아브너라는 인물이다. 그는 작전을 이끌면서, 그 작전이 자신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경험한다. 처음에 그는 이 임무가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자신이 치르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직면하게 된다. 이 변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적 축이다. 에릭 바나의 연기는 이 변화를 담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다. 영화 초반의 아브너는 자신감이 있고, 목적의식이 명확하다. 그러나 작전이 진행될수록 그의 눈빛이 변한다. 확신이 흔들리고, 수면이 방해받으며, 아내와의 전화에서 그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그를 고립시킨다. 바나는 이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거의 보이지 않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 서서함이 이 변화를 더 실재하게 만든다. 아브너가 치르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의 상실이다. 그는 처음에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각각의 암살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예상한 것과 달라질 때마다 그 믿음이 조금씩 무너진다. 특히 팀원들이 하나씩 죽어가면서 이 작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도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 무너짐이 가속화된다. 아브너와 그의 팀원들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감정적 층위를 만든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왔고, 이 임무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스티브(다니엘 크레이그 분)는 가장 직접적이고 감정이 없다. 벨기에인 로베르(마티외 아말릭 분)는 점점 더 불안해진다. 이 다름들이 이 영화에서 팀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내부적으로 어떻게 분열되는가를 보여준다. 함께 시작했지만, 이 일이 각자에게 다른 것을 한다. 아브너가 치르는 것들의 가장 개인적인 층위는 가족과의 관계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이스라엘에 남기고 떠났다가, 나중에 그들을 브루클린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것들이 그와 가족 사이의 거리를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그를 고립시킨다. 이 고립이 이 영화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삶에서 치르는 대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는다.
폭력의 순환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
뮌헨의 마지막 장면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아브너와 에프라임(제프리 러시 분)이 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배경에 담긴다. 이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 가장 명확한 메시지를 담는다. 뮌헨의 폭력이 9.11로 이어지는 연쇄의 일부라는 것. 폭력의 순환이 1972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며, 2001년에 끝난 것도 아니라는 것. 폭력의 순환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통찰이다.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들을 암살한다. 그러나 각각의 암살 이후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 표적들을 제거해도 팔레스타인의 대의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 대의를 이어받는다. 이 사실이 이 영화에서 아브너를 가장 깊이 흔드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이 무언가를 해결했는가, 아니면 순환에 또 하나의 고리를 추가한 것인가. 에프라임이 이 영화에서 국가의 논리를 대표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그는 아브너에게 이 작전이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작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지원하며, 마지막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라고 요청한다. 그에게 폭력은 수단이며, 그 수단의 도덕적 무게는 목적에 의해 정당화된다. 아브너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분리되는 지점이며, 동시에 이 영화가 국가의 논리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폭력의 순환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이 영화는 폭력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폭력이 무엇을 만드는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아브너가 브루클린에서 에프라임의 제안을 거부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적 결정이다. 그는 국가의 논리에서 벗어나기로 선택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폭력의 순환을 멈추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2005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유효한 이유가 폭력의 순환이라는 주제에 있다. 테러와 보복, 보복과 다시 테러로 이어지는 이 순환이 뮌헨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이 순환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 이 영화를 시간을 넘어 유효하게 만드는 이유다. 폭력의 순환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 그 순환을 직시하는 것이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뮌헨은 답을 주지 않는 영화다. 복수가 정의인가, 아브너가 옳은가, 폭력의 순환을 멈출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이 영화는 명확한 답을 거부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면서 사실을 직시하고, 에릭 바나의 연기는 한 인간이 국가의 이름으로 살인하면서 무엇을 치르는가를 가장 완전하게 담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배경에 담기는 것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그 질문의 무게가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