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2015)은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SF 생존 드라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편집상 등을 수상했으며, 맷 데이먼의 연기가 중심축이 된다. 화성 탐사 임무 중 동료들과 분리되어 홀로 남겨진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가 제한된 자원으로 생존하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담는 이 영화는, SF 장르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과학에 대한 진지한 존중,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협력의 가치를 담는다. 비관적이 되기 쉬운 상황을 낙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낙관이 공허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과학과 이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의 과학
마션의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는 화성에 혼자 남겨진다. 동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떠났으며, 지구와의 통신 수단도 없다. 식량은 31일분, 다음 화성 탐사 임무는 4년 후. 이 조건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와트니가 이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이 이 영화를 다른 생존 영화들과 구분 짓는다.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으며, 하나씩 실행한다.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다. 식물학자인 와트니가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아이디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의 배설물을 비료로 활용하고, 한정된 공간을 농장으로 전환하며, 물을 생성하는 화학 반응을 이용한다. 이 과정이 영화 안에서 상세하게 설명된다. 과학적 정확성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며, 실제로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관객들이 화성의 환경과 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이 가치의 결과이기도 하다.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의 과학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 해결만이 아니다. 와트니가 일지를 기록하고, 유머를 유지하며,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은 심리적 생존의 기술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이 주는 고립감과 싸우는 방법을 그는 과학자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오늘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며, 전체 그림이 아닌 현재의 단계에 머무는 것. 이 집중이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기반이다. 맷 데이먼의 연기는 이 고독을 스크린 위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그는 혼자 화성에 있으면서도 관객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으로 연기한다. 일지를 녹화하는 장면들에서 그의 표정, 말투, 몸짓이 와트니라는 인물을 완전하게 구성한다. 두려움이 없지 않지만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 유머로 상황을 처리하되 그 유머 뒤에 진지함이 있는 사람. 이 균형이 와트니를 공감 가능하면서도 비범한 존재로 만든다. 과학이 생존의 언어가 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와트니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 결정의 근거는 과학적 계산이다. 감에 의존하거나, 기적을 바라거나,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이 태도가 이 영화를 단순한 생존 드라마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에 대한 신뢰의 선언이며, 그 신뢰가 실제로 무언가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증명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영웅주의일 때
마션에서 영웅주의는 특별한 능력이나 초월적인 용기에서 오지 않는다. 와트니가 보여주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이고, 그 의지가 매일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된다. 이 소박한 영웅주의가 이 영화를 다른 SF 영웅 서사와 구분 짓는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잘 훈련된 과학자이며, 그 훈련이 극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영화는 솔직하게 보여준다. 감자 농장이 오염되어 모두 죽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타격이 큰 순간이다. 수개월의 노력이 한 번의 사고로 사라진다. 와트니는 이 순간 처음으로 진짜 위기에 직면한다. 계획이 실패했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가 이 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이 영화에서 영웅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무너지지만, 다시 일어나 다음 계획을 세운다. 지구에서 와트니의 상황을 파악한 NASA가 구조 작전을 준비하는 과정도 이 영웅주의의 집단적 형태를 보여준다. 빈센트 카푸르(치웨텔 에지오포 분), 애니 몬트로스(크리스텐 위그 분), 테디 샌더스(제프 다니엘스 분)로 이루어진 지구 팀이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과정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한 개인의 미덕이기 이전에 조직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규칙을 깨고, 예산을 넘어서고, 기술적 한계를 밀어붙이는 이 집단적 의지. 와트니의 동료들이 구조 임무를 위해 자신들의 귀환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다. 이 결정이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팀 구성원들이 함께 내리는 선택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개인의 영웅주의일 때, 그것은 용기가 된다. 집단의 영웅주의일 때, 그것은 연대가 된다. 마션에서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이 이 영화의 감정적 절정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영웅주의인 이 영화는, 동시에 그 포기하지 않음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지도 보여준다. 와트니 혼자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구 팀의 노력이 필요하고, 중국 우주 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며, 와트니의 동료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개인의 영웅주의는 공동체의 지지 위에 서 있다는 것, 그 지지 없이 홀로 영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한다.
지구가 하나의 팀이 되는 방식
마션의 가장 큰 스케일의 주제는 협력이다. 와트니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전 세계가 움직인다. NASA, 중국 국가항천국, 전 세계의 과학자들, 그리고 수억 명의 지구인들이 이 구조 작전에 참여하거나 지켜본다. 이 집합적 관심과 노력이 이 영화에서 지구가 하나의 팀이 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중국 우주 기관이 구조 작전에 협력하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다. 현실에서 미국과 중국의 우주 개발 프로그램은 경쟁 관계에 있으며,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중국 우주 기관은 자신들의 추진체 기술을 NASA와 공유하며 구조 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이 허구적 협력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국가적 경쟁보다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며, 그 가치 앞에서 경계는 의미를 잃는다. 지구가 하나의 팀이 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구조 장면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화면 앞에 모여 와트니의 구조를 기다린다. 이 이미지가 공허한 보편주의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영화 전체가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협력이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연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연대다. 이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와트니가 지구 팀을 신뢰하고, 지구 팀이 와트니를 신뢰하며, 각 팀이 서로를 신뢰하는 것. 이 신뢰가 깨질 위기가 여러 번 온다. NASA가 와트니의 동료들에게 구조 작전의 계획을 숨기는 장면은 이 신뢰의 균열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모든 팀이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지구라는 팀은 가장 강해진다. 와트니가 구조된 후 지구로 돌아와 NASA 훈련 프로그램에서 새 우주 비행사들에게 하는 말은 이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를 담는다. 그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를 살린 것은 과학이었지만, 그 과학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지구가 하나의 팀이 된다는 것은 낭만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들의 결과다. 와트니라는 한 사람을 살리기로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의 결정이,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마션은 낙관적인 영화다. 그러나 그 낙관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어려움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인간이 포기하지 않을 때 무엇이 가능한지, 그리고 협력이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지를 이 영화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맷 데이먼의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연출이 만들어내는 화성의 고독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 안에서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와트니의 이야기는 오래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