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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리뷰 (보이지 않는 사람의 보이는 삶, 물이 씻어가는 것들, 계급이 감추는 사랑)

by tae11 2026. 5. 20.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8)는 감독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한 반자전적 흑백 영화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화적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의 로마 구역을 배경으로, 중산층 가정의 가사 도우미 클레오의 일상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섬세하고 깊이 있는 헌사다. 쿠아론은 클레오를 중심에 두면서, 그녀의 삶을 통해 멕시코 사회의 계급, 인종, 젠더의 구조를 조용히 해부한다.

로마 포스터

보이지 않는 사람의 보이는 삶

로마의 첫 장면은 타일 바닥에 물이 흘러내리는 이미지다.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 분)가 청소하는 그 바닥 위로 물이 퍼지고, 물이 반사하는 하늘이 보인다. 이 첫 이미지가 이 영화 전체의 언어를 규정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것을 반영하는 것, 일상적인 것 안에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청소라는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 클레오는 이 가족의 집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가장 적게 보이는 사람이다. 클레오는 원주민 출신의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멕시코시티 로마 구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세탁을 한다. 그녀의 하루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을 청소하고,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한다. 이 반복이 이 영화의 리듬이다. 쿠아론은 이 반복을 빠르게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클레오의 하루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그리고 그 많음이 어떻게 당연하게 여겨지는지를 카메라로 기록한다. 알폰소 쿠아론이 직접 촬영한 이 영화의 카메라는 클레오를 따라가면서도 클레오를 고정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부드럽게 이동하고, 인물과 공간을 동시에 담으며, 어떤 장면도 드라마틱하게 강조하지 않는다. 이 평등한 시선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연출적 선택이다. 클레오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그것이 충분히 보일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이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람의 삶을 충분한 시간과 함께 담는 것이다.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이 영화 이전에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였다. 이 선택이 이 영화에서 결정적이다. 그녀의 연기는 훈련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에 가깝다. 클레오가 무언가를 느낄 때, 그 느낌이 아파리시오의 몸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계산되지 않은 반응, 자연스러운 침묵,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감정. 이것이 이 영화에서 클레오가 살아있는 이유이며,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다. 클레오가 가족들과 나누는 관계는 이 보임과 보이지 않음의 역설을 가장 잘 드러낸다. 아이들은 클레오를 사랑하고 클레오를 필요로 한다. 어머니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분)는 클레오를 가족처럼 대하지만, 그 가족처럼이라는 표현이 진짜 가족과 어떻게 다른지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클레오는 이 가족 안에 있으면서도 이 가족의 외부에 있다. 그 위치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긴장이다.

물이 씻어가는 것들

로마에서 물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다. 타일 바닥의 물, 비, 파도, 양수, 눈물. 이 모든 물들이 이 영화 안에서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연결된다. 물은 씻어낸다. 그러나 무엇이 씻겨나가는가. 그리고 씻겨나간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클레오의 임신은 이 영화의 가장 중심적인 서사다. 그녀의 남자친구 페르민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사라진다. 그녀는 혼자 임신을 감당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소피아가 클레오를 지지하는 방식은 이 두 여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소피아 자신도 남편에게 버려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 두 여성이 각자의 방식으로 남성에게 버려지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계급의 경계를 넘어 어떤 연결이 생겨난다. 클레오의 출산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길고 가장 무거운 순간이다. 그녀의 딸은 태어나지 못한다. 이 상실이 클레오에게 가해지는 것은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완전하다. 병원 복도에서 소피아가 클레오를 안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가장 가깝게 연결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포옹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그 연결이 계급의 경계를 실제로 넘을 수 있는지는 이 영화가 끝까지 의심한다. 해변 장면은 이 영화의 감정적 정점이다. 클레오는 수영을 못 하면서도 파도 속으로 들어가 익사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한다. 이 장면은 스펙터클하게 연출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클레오가 파도 속에서 아이들을 붙잡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리고 해변으로 돌아온 클레오가 아이들을 안고 울면서 처음으로 말한다. 아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그 고백이 이 영화에서 클레오가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드러내는 순간이다. 물이 씻어가는 것은 표면이다. 그러나 물이 씻어갈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계급이 만들어놓은 구조, 사회가 결정한 자리, 그리고 한 인간이 받아야 하는 것과 실제로 받는 것 사이의 간극. 클레오가 아이를 잃은 것은 씻겨나가지 않는다. 클레오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리는 해변의 구조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은 씻어내지만, 구조는 남는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물이 말하는 가장 슬픈 진실이다.

계급이 감추는 사랑

로마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그 사랑은 계급이라는 구조 안에서 항상 불완전하고, 항상 비대칭적이며, 항상 무언가를 감춘다. 소피아와 클레오 사이의 관계가 이 주제의 가장 복잡한 표현이다. 소피아는 클레오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클레오도 이 가족을 진심으로 돌본다. 그러나 이 상호적인 돌봄이 동등한 것인가. 그 질문에 이 영화는 쉽게 답하지 않는다. 계급이 감추는 첫 번째 사랑은 아이들과 클레오 사이의 것이다. 아이들은 클레오를 사랑한다. 그 사랑이 진짜라는 것은 의심하기 어렵다. 그들은 클레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클레오에게 안기며, 클레오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클레오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이 영화가 담지 않는다. 계급 사회에서 어린 시절의 사랑은 성인이 된 뒤의 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랑은 있지만, 그 사랑이 구조를 바꾸지는 않는다. 소피아가 클레오에게 표현하는 것들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그 사랑이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도 드러난다. 가구를 사러 갈 때 클레오를 데려가고, 병원에서 함께 있어주며, 해변에서 포옹하는 소피아. 그러나 클레오에게 닥친 상실과 고통이 소피아에게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가. 이 영화는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사랑은 표현되지만, 그 사랑이 계급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쿠아론이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본 가사 도우미 리보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영화 자체가 하나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영화 안에서도 그 사랑의 한계는 드러난다. 클레오는 이 가족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인정받았는가. 쿠아론이 이 영화를 만들어 클레오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수십 년 뒤에야 이루어진 그 인정의 형태다. 계급이 감추는 사랑은 때로 그 사랑이 표현될 언어와 방법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화의 마지막에 클레오는 다시 계단을 오른다. 그녀의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아이를 잃었고, 남자친구에게 버려졌으며,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했지만 자신의 자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단을 오른다. 이 마지막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 계급이 감추는 사랑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이다. 사랑은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그 사랑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전부인 세계에서, 클레오는 계속 살아간다.

 

로마는 조용하고 느리며 말이 없는 영화다. 그러나 그 조용함 안에 이 영화가 말하는 모든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이게 만드는 것, 물이 씻어갈 수 없는 구조를 직시하는 것, 그리고 계급이 감추는 사랑의 불완전함을 정직하게 담는 것. 알폰소 쿠아론은 자신이 잊지 못한 사람을 영화의 중심에 두면서, 그 사람이 살았던 세계를 가장 섬세하게 재현했다. 클레오가 계단을 오르는 마지막 이미지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했던 모든 삶에 대한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