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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리뷰 (꿈과 사랑이 같은 방향을 향할 수 없을 때, 재즈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현실이 된 가정법)

by tae11 2026. 5. 20.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2016)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포함한 6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해 영화계의 가장 큰 사건이 된 작품이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연기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뮤지컬 장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동시에 그 장르가 원래 말해온 것, 즉 꿈과 현실의 간극을 가장 솔직하게 직시한다. 달콤하게 시작해 씁쓸하게 끝나는 이 영화는, 무언가를 이루는 것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항상 함께 가능하지 않다는 진실을 노래로 말한다.

라라랜드 포스터

꿈과 사랑이 같은 방향을 향할 수 없을 때

라라랜드는 두 사람이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은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열고 싶다. 순수한 재즈를 보존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미아(엠마 스톤 분)는 배우가 되고 싶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거절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꿈은 각각 독립적으로 완결된 것이고, 그 독립성이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을 만든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방식부터 이미 충돌의 예고가 있다. 막힌 고속도로에서 서로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파티에서 냉담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우연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만나면서 연결된다. 이 우연한 반복이 뮤지컬 장르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다. 두 사람이 빌라노바 극장에서 처음으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불안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도 어렴풋이 감지한다. 꿈과 사랑이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은 영화의 중반부부터다. 세바스찬은 생계를 위해 밴드에 합류하고, 그 결정이 그를 순수한 재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미아는 오디션에서 계속 실패하다가 자신이 쓴 1인극을 무대에 올리지만, 관객은 거의 없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실패와 타협을 경험하면서, 서로를 향한 사랑이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꿈이 흔들릴 때, 사랑도 함께 흔들린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 영화에서 꿈과 사랑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지 않는다. 그 대신 두 가지가 공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파리로 가라고 권유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순간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꿈을 위해 함께 있지 말라고 한다. 사랑이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상대방의 꿈을 자신의 필요보다 앞에 두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 표현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엠마 스톤의 연기는 이 갈등을 가장 섬세하게 담는다. 미아는 강하지만 취약하고, 확신에 차 있지만 두려움이 있다. 그녀가 오디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장면인 오데온 오브 스타는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 노래가 오디션 패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녀의 삶을 바꾼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동시에 사랑이 완전히 끝나는 시작이기도 하다. 그 두 가지가 같은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이다.

재즈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라라랜드에서 재즈는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세바스찬의 철학이자 이 영화가 탐구하는 더 넓은 주제의 메타포다. 재즈는 즉흥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으며, 소수의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이해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라져가고 있다. 세바스찬은 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키고 싶어하고, 그 욕망이 그를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면서도 그를 세바스찬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재즈를 둘러싼 세바스찬의 열정은 이 영화 초반에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그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자신이 연주해서는 안 되는 곡을 연주하고 해고된다. 그리고 밖에서 만난 미아에게 재즈의 역사와 의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그 설명이 처음에는 미아를 짜증나게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진정성이 결국 그녀를 끌어당긴다. 무언가를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미아가, 그리고 관객이 동시에 알아채는 순간이다. 재즈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타협이 필요하다. 세바스찬이 키이스(존 레전드 분)의 밴드에 합류하는 결정은 그 타협의 형태다. 키이스의 음악은 재즈와 팝의 혼합이며, 상업적이고 성공적이다. 세바스찬은 그것이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닿는다는 것도 안다. 이 타협이 세바스찬에게 돈을 주지만, 그 돈이 무엇의 대가인지를 영화는 질문한다. 꿈에서 멀어지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 될 때, 생존이 의미 있는가. 재즈와 미아의 관계도 이 주제와 연결된다. 미아는 처음에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바스찬의 열정을 통해 그 음악을 듣는 방법을 배운다. 이 배움이 두 사람의 관계의 본질을 담는다. 서로를 통해 세계를 다르게 보게 되는 것. 미아가 재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세바스찬을 이해하게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그러나 미아가 파리로 떠난 뒤,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연다. 꿈은 이루어졌다. 그것을 함께 누릴 사람은 없지만. 재즈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세바스찬이 만든 클럽은 그것에 대한 답이다. 그것이 상업적으로 성공할지, 오래 유지될지는 영화가 담지 않는다. 다만 그 클럽의 이름이 세바스찬이 원하던 이름이고, 그 공간이 그가 꿈꾸던 것이라는 것만 보여준다. 꿈이 이루어질 때 그 이루어짐이 어떤 모습인지를, 라라랜드는 축하가 아닌 침묵으로 담는다.

현실이 된 가정법

라라랜드의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결말 중 하나다. 수년이 지난 뒤 미아는 남편과 함께 우연히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 들어선다.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치다가 그녀를 본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이 함께했다면 어떤 삶이 되었을지를 음악으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 가정법의 시퀀스가 영화의 마지막을 차지한다. 이 가정법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삶은 아름답다. 두 사람이 함께 파리로 가고, 함께 재즈 클럽을 열고, 함께 아이를 낳고, 함께 늙는다. 이 상상의 삶이 화면에서 색채롭고 따뜻하게 펼쳐지는 동안, 관객은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이 동시적 감정, 아름다운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감동받는 것이 이 시퀀스가 만들어내는 가장 독특한 경험이다. 가정법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올 때,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 짓는다. 그리고 미아는 남편과 함께 클럽을 나선다. 이 마지막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쉬움인가, 감사인가, 아니면 그것이 옳았다는 인정인가. 셔젤은 이 미소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관객 각자가 자신의 삶 안에서 그 의미를 찾도록 열어둔다. 현실이 된 가정법이라는 이 영화의 마지막 언어는 매우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이 각자의 꿈을 이루었다. 미아는 성공한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 클럽을 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이 서로와 함께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것이 실패인가, 성공인가.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는 대신, 두 가지 모두라는 것을 그 마지막 미소 안에 담는다. 무언가를 얻는 것은 언제나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의 결과이며, 그 포기가 항상 후회는 아니라는 것. 라라랜드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이 결말이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결말과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고,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지 않으며, 꿈을 이루는 것이 사랑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닌 이유는, 그 포기가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삶이 서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프지만, 그 아픔이 그들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현실이 된 가정법은 아쉬움이지만, 그 아쉬움이 삶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이 항상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말하는 영화다. 데이미언 셔젤은 뮤지컬의 화려함과 현실의 씁쓸함을 하나의 영화 안에 담으면서, 두 가지가 서로를 강화하게 만들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케미스트리는 두 사람의 사랑이 진짜였다는 것을 믿게 만들고, 그 믿음이 마지막 가정법 시퀀스를 더 아프게 만든다. 마지막 미소가 스크린에서 사라진 뒤에도, 그 영화가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