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179분짜리 장편 영화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연극 연출가 가후쿠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뒤 히로시마로 향해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연출한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드라이버 미사키와 함께 매일 차를 타며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의 상처에 가까워진다. 이 영화는 느리고 길지만, 그 길이가 이유 있는 영화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오는 순간을 위해, 영화는 기꺼이 시간을 소비한다.

말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침묵의 영화다.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분)는 말이 적은 사람이다. 그는 연극 연출가로서 배우들에게 대사를 가르치고, 텍스트의 의미를 탐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말들은 끝내 하지 못했다.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 분)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 영화 전체의 무게를 결정한다. 오토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잠자리에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습관이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그녀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가후쿠는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오토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때를 기다렸다. 이 독특한 방식의 공유가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이었다. 그러나 그 친밀함은 완전하지 않았다. 가후쿠는 오토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토의 내면 전체를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오토는 가후쿠가 자신의 불륜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 상호적 침묵이 비극을 만든다. 오토가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말해지지 않은 모든 것들은 영원히 말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가후쿠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는 슬픔을 느끼지만, 그 슬픔이 순수한지 아닌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아내를 잃은 슬픔인지, 아내에게 묻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내의 불륜을 묵인했다는 자책인지. 그 감정들이 뒤섞여 있어서, 가후쿠는 어디서부터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영화는 이 복잡한 감정 상태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가후쿠의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에도 아내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매일 듣는다. 그 테이프에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대사들이 담겨 있고, 가후쿠는 그것을 대본 암기에 사용한다. 아내의 목소리와 함께 대사를 연습하는 이 행위는, 아내를 놓지 못하는 집착이면서 동시에 아내와 계속 대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이 반복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는 가후쿠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침묵을 안고 있다. 오토의 불륜 상대였던 청년 고우스케(오카다 마사키 분), 그리고 가후쿠의 드라이버가 되는 미사키(미우라 토코 분)도 각자 말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들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소통은 말을 많이 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을 함께 견디는 것,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온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 역설적인 소통의 방식을 자동차 안이라는 공간을 통해 구현한다.
타인의 언어로 슬픔을 건너는 법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장 독창적인 설정 중 하나는 다언어 연극이다. 가후쿠가 히로시마에서 연출하는 바냐 아저씨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수화 등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배우들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각자 자신의 언어로 대사를 말하며 장면을 만들어간다. 이 설정은 단순한 실험적 연출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주제와 깊이 연결된 선택이다. 타인의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말이 전달하는 감정과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오히려 언어의 장벽이 있을 때,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존재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다언어 연극이 작동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배우들은 상대방의 대사를 귀로 듣고, 그 리듬과 감정을 따라 자신의 대사를 이어간다.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언어의 문제는 가후쿠의 슬픔과도 직접 연결된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슬픔을 말하려 할 때마다 그 말이 불충분하게 느껴진다. 아내와의 관계가 복잡했던 만큼, 그 상실도 단순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체호프의 텍스트를 빌린다. 바냐 아저씨의 대사들, 특히 소냐의 마지막 독백은 가후쿠가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말해준다. 타인의 언어, 다른 시대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에 접근하는 것이다. 미사키와 가후쿠의 대화도 이 주제 위에 놓여 있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대화는 직접적이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항상 약간의 거리를 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것을 발견한다. 미사키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짊어온 죄책감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 내려놓는 행위다. 그리고 가후쿠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죄책감과도 마주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 사람이 미사키의 고향인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장면은 이 주제의 정점이다. 눈 덮인 폐허 앞에서 미사키는 마침내 말한다. 오랫동안 혼자 안고 있던 것들을, 드디어 다른 사람의 언어가 닿는 곳에 꺼내놓는다. 그리고 가후쿠도 그것에 응답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진짜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에서, 언어는 더 이상 소통의 장벽이 아닌 치유의 도구가 된다. 슬픔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언어와 맞닿을 때 비로소 건너질 수 있다.
연극이라는 거울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는 단순한 극 중 극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영화의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거울이며, 그들이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말해주는 매개다. 가후쿠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혹은 이 작품이 가후쿠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냐 아저씨는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가후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극 연습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고우스케다. 오토의 전 연인이었던 그가 가후쿠의 연출 작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영화 안에서 가장 불편한 설정이다. 가후쿠는 고우스케를 캐스팅하면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완전히 알고 있다. 그는 아내의 전 연인과 함께 일하면서, 아내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처벌이면서, 동시에 아내를 이해하려는 마지막 시도이기도 하다. 고우스케는 연습 중 점점 무너져간다. 그는 바냐 역을 맡았지만, 바냐의 감정에 압도당해 자신의 것과 역할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가후쿠는 그에게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읽으라고 지도한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려 하지 말고, 텍스트를 정확하게 전달하라고. 이 연출 철학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뒤에 감정을 숨겨두면 그것이 오히려 더 강하게 전달된다는 역설. 가후쿠 자신이 삶에서 실천해온 방식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방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소냐의 마지막 독백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수화를 사용하는 한국인 배우 이유나(박유림 분)가 연기하는 소냐의 독백은, 언어와 신체가 결합된 방식으로 전달된다. 소냐는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고. 긴 밤들을 견디고, 노인이 되면 평화롭게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대사는 체호프가 쓴 것이지만, 이 영화 안에서는 가후쿠와 미사키 모두에게 건네지는 말이 된다. 연극이 거울이 되는 순간이다. 무대 위의 대사가 객석 너머로 흘러나와, 관객의 삶과 맞닿는 순간. 연극이 끝난 뒤 가후쿠는 처음으로 운다. 그 눈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내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위한 것인지. 그 눈물의 이유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이 영화가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거울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 싫어하던 것, 외면하던 것까지 모두 비춘다. 연극이라는 거울 앞에서, 가후쿠는 마침내 자신을 마주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서두르지 않는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관객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말하지 못한 것들,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 영화만큼 솔직하고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은 드물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영화를 통해,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완전한 이해가 아닌, 불완전한 공존 속에서.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오래된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