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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리뷰 (마지막 황녀가 지운 이름, 손예진이 담아낸 것들,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by tae11 2026. 6. 14.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2016)는 대종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황금촬영상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손예진이 덕혜옹주를, 박해일이 김장한을 연기하며 559만 관객을 동원했다. 권비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고종의 외동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나 열세 살에 일본으로 강제 이주된 덕혜옹주의 일생을 담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며, 이동진 평론가가 여배우를 가장 잘 찍는 감독이라 평가한 허진호의 시선이 손예진이라는 배우와 만나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층위를 완성한다.

덕혜옹주 포스터

마지막 황녀가 지운 이름

덕혜옹주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가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사실이 갖는 무게다. 덕혜옹주는 1912년 태어나 1989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이 이 영화보다 불과 27년 전에 끝났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이 오랫동안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고종의 외동딸로 태어나 나라를 잃은 뒤 일본의 정략적 도구가 되었던 한 사람의 이름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열세 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는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아픈 출발점이다. 아직 아이인 사람을 국가의 논리가 낯선 땅으로 밀어넣는 그 폭력이, 허진호의 연출에서 격정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대신 덕혜의 얼굴을, 그 표정을 오래 담는다. 이 침묵의 선택이 이 감독의 방식이며, 그 방식이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만났을 때 무엇을 만들어내는가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덕혜옹주가 지워진 이름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 교과서에서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쓰소 마사에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고, 일본 귀족과 강제로 결혼해야 했으며,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귀국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1962년이었고, 그때 그녀의 나이는 쉰 살이었다. 이 기간의 공백이 이 영화가 채우려 하는 것이다. 역사적 실제와 영화적 허구 사이의 간극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논쟁 지점이다. 영화 속 독립운동 참여는 실제로 확인되지 않으며, 김장한이라는 인물도 가상이다. 이 허구화가 덕혜옹주를 더 능동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허진호 감독 스스로 밝혔다. 역사가 수동적으로 기록한 사람을 영화가 능동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 그 시도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남겨진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이 영화의 배경이지만, 허진호는 시대의 분노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의 감각에 집중한다. 덕혜가 일본에서 보내는 시간들, 고국의 언어와 음식과 냄새를 그리워하는 방식이 거대한 역사적 서술보다 더 직접적으로 식민지배의 폭력을 전달한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제도의 붕괴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 전체가 이방인의 것으로 교체되는 경험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덕혜의 몸을 통해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황녀가 지운 이름이라는 주제가 이 영화에서 완성되는 것은 결말부다. 귀국한 덕혜옹주가 창덕궁 앞에 서는 장면. 그 공간이 그녀에게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 공간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가가 말 없이 전달된다. 허진호 감독이 가장 잘 하는 것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이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확인된다.

손예진이 담아낸 것들

덕혜옹주에서 손예진의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성취다.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이 이 연기에 대한 가장 공식적인 인정이다. 그러나 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역할이 손예진이라는 배우에게 요구한 것들의 폭이다. 활기찬 어린 시절부터 노년의 정신질환까지, 한 사람의 생애를 통과하는 연기. 손예진이 이 역할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이 정신질환을 앓는 장면들이다. 허진호 감독과 손예진의 만남이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갖는 이유가 이 장면들에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허진호를 여배우의 연기를 가장 잘 극대화하는 감독이라고 평가했을 때, 그 극대화가 손예진에게서 가장 완성된 형태로 드러난 것이 이 영화다. 손예진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과장의 부재다. 비운의 황녀를 연기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 즉 슬픔을 강조하고 비극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이 영화는 피한다. 대신 덕혜가 내면에서 어떻게 버티는가를 담는다. 버티는 사람의 얼굴은 무너지는 사람의 얼굴과 다르다. 그 차이를 손예진이 포착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감정적 핵심을 만든다. 박해일의 김장한이 이 영화에서 손예진과 만들어내는 호흡도 빠뜨릴 수 없다. 황금촬영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의 연기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정의 부담을 상쇄한다. 덕혜를 지키려는 장한의 존재가 이 영화에서 실제 역사에서 덕혜를 지키려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 대리의 역할을 박해일이 과잉 없이 소화한다. 손예진이 이 역할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 화면에서 느껴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어린 시절의 활기, 이국 땅에서의 억눌림, 정신이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귀국 이후의 고요함. 이 네 가지 다른 상태를 하나의 몸이 담아내는 것은 단순한 연기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손예진이 이 역할에서 보여주는 것이 기술이 아니라 이해에서 왔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진다. 손예진이 담아낸 것들 중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귀국 이후의 장면들이다. 긴 세월이 지나 돌아온 사람의 몸이 담고 있는 것들, 낯익으면서 낯선 공간 앞에 서는 방식.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손예진이 보여주는 것이 연기라는 것을 잊게 만들 때, 이 영화는 자신이 하려는 것의 절반을 이미 달성한 것이다.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덕혜옹주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논쟁은 역사와 픽션의 경계에 관한 것이다. 영화가 실존 인물을 다룰 때, 그리고 그 실존 인물이 역사적으로 논쟁적인 시기를 살았을 때, 허구화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이 질문이 이 영화를 단순한 역사 드라마 이상으로 읽게 만드는 맥락이다. 허진호 감독이 덕혜를 더 능동적인 인물로 만들려 했다는 발언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연출적 의도를 말해준다. 역사 기록 속의 덕혜는 대부분 수동적인 피해자로 그려진다. 강제 이주, 강제 결혼, 귀국 거부.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 가해진 것들이다. 영화는 그 수동성을 그대로 두지 않고 독립운동 참여라는 능동적 서사를 덧붙인다. 이 선택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는 비판과, 지워진 사람을 복원하는 방식으로서 정당하다는 옹호가 동시에 존재한다.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이 영화가 가장 균형을 찾는 부분은 덕혜의 내면을 그리는 방식이다. 독립운동 참여라는 외적 행동보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내면의 감각이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덕수궁의 기억, 아버지 고종과의 시간, 한국어로 꾸는 꿈. 이것들이 기록으로 확인된 것인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이 사람이 느꼈을 것이라는 공감의 감각이 강하게 작동한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이 영화에서 역사물과 어떻게 만나는가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는 본래 적은 인물과 내밀한 공간에서 디테일로 승부하는 감독이다. 대형 사극의 스펙터클보다 두 사람 사이의 눈빛에 집중하는 방식. 그 방식이 대규모 역사물의 형식과 충돌하면서 생기는 긴장이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내부 마찰이며, 동시에 이 영화가 전형적인 역사 블록버스터와 달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559만이라는 관객 수가 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과 무관하게, 이 많은 사람들이 덕혜옹주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영화가 역사를 단순화하거나 허구화한다는 비판이 정당하더라도, 그 영화가 없었다면 계속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에게 닿았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완벽한 기록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닿는 이야기였다.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이 영화가 가장 완성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말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덕혜옹주가 귀국한 이후의 삶, 그리고 죽음. 이 영화는 그것을 감동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돌아왔지만 이미 많은 것이 지나간 뒤였다는 것. 늦은 귀환이 치유가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고독이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인정한다. 그 인정이 역사에 대한 가장 정직한 태도다.

 

덕혜옹주는 지워진 이름을 복원하려는 영화다. 마지막 황녀가 지운 이름, 손예진이 담아낸 것들, 그리고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이 영화가 선택한 것들이 허진호의 연출과 두 배우의 연기로 완성된다.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보다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겼는가를 감각으로 전달하는 데 이 영화의 진짜 목표가 있다. 창덕궁 앞에 선 덕혜의 얼굴이 오래 남는 이유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