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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리뷰 (황제가 되는 것과 황제로 사는 것, 조세핀이라는 균열, 전쟁이 만드는 신화와 그 이면)

by tae11 2026. 6. 9.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2023)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의상상,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바네사 커비가 조세핀을 연기하며, 다리우스 월스키가 촬영을 맡았다.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서 영웅으로 부상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담는 이 영화는 전통적인 전기 영화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리들리 스콧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완성된다. 전쟁의 스펙터클보다 한 인간의 취약함에 더 집중하는 이 영화는, 역사가 영웅으로 기억하는 인물의 사적이고 불완전한 내면을 가장 정직하게 담으려 한다.

나폴레옹 포스터

황제가 되는 것과 황제로 사는 것

나폴레옹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 분)이 교황 앞에서 스스로 왕관을 자신의 머리에 얹는 순간이다. 누가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쓴다는 것. 이 행위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는다. 권력을 위임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 그리고 그 쟁취가 정당성을 대체한다는 믿음. 황제가 되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동시에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황제가 되는 것과 황제로 사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탐구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가장 탁월하다. 그는 전술적 천재이며, 위기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사고하고, 병사들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기억된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 그가 보여주는 것들이 그 신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변덕스럽고, 조세핀에 집착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견디지 못한다. 호아킨 피닉스의 캐스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피닉스는 나폴레옹을 위풍당당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가 담는 나폴레옹은 어딘가 어색하고, 사교적으로 서투르며, 사랑 앞에서 놀라울 만큼 나약하다. 이 나약함이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을 역사적 아이콘이 아닌 인간으로 만드는 핵심이다. 글래디에이터에서 함께 작업한 리들리 스콧과 피닉스의 두 번째 만남이 이 영화에서 황제의 공적 얼굴과 사적 내면 사이의 간격을 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황제로 사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담기는 것은 나폴레옹이 자신의 결정들이 가져오는 결과들과 직면하는 순간들이다. 러시아 원정의 실패, 백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만든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 황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지는 것인가를 이 영화는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과 함께, 그 스펙터클 이후의 침묵으로 담는다. 황제가 되는 것과 황제로 사는 것 사이의 간격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야망이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원했던 것이 황제의 자리였지만, 그 자리에 오른 뒤 그가 원하는 것이 달라진다. 혹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달라지지 않음이 그를 파멸로 이끈다. 더 많은 땅, 더 많은 전쟁, 더 많은 권력. 멈출 수 없는 욕구가 제국을 만들었고, 같은 욕구가 제국을 무너뜨렸다.

조세핀이라는 균열

나폴레옹에서 조세핀(바네사 커비 분)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나폴레옹의 모든 전쟁 장면들, 모든 정치적 결정들이 결국 조세핀과의 관계라는 개인적 맥락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시각이다.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만드는 대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는다. 이 선택이 이 영화를 논쟁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바네사 커비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조세핀을 단순한 황후 이상으로 만든다. 그녀는 나폴레옹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완전하지 않다.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고, 나폴레옹을 이용하며, 동시에 그에게 의존한다. 이 복잡성이 조세핀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만든다. 커비는 조세핀의 계산과 감정이 항상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 인물을 담는다. 조세핀이 나폴레옹에게 균열인 이유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표현되는 것은 그가 전장에서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들이다. 유럽을 정복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유치할 만큼 애절한 편지를 쓴다. 이 편지들이 역사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가장 충격적인 층위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적 지도자가 한 여자에게 가장 나약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이혼하는 결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다. 후계자를 남기기 위해 그는 조세핀과 결혼 관계를 끝낸다. 이 결정이 정치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 이후 나폴레옹의 운세가 꺾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조세핀이 그에게 행운의 상징이었는가, 아니면 그녀를 잃은 것이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부순 것인가. 이 영화는 그 답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조세핀이라는 균열이 이 영화에서 완성되는 방식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 중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마지막 장면이다. 제국도, 전쟁도, 권력도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이 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이 마지막이 이 영화에서 조세핀이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가장 근본적인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가장 조용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전쟁이 만드는 신화와 그 이면

나폴레옹에서 전투 장면들은 리들리 스콧이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들이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워털루 전투, 그리고 러시아 원정. 이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부분들이며, 동시에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을 신화로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스펙터클이 끝난 뒤에 무엇이 남는가이다. 전쟁이 만드는 신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담기는 것은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이다. 나폴레옹의 전술적 천재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전투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이 승리의 장면이 얼음 위에서 익사하는 러시아 병사들의 이미지와 함께 담긴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연출적 선택이다. 승리와 학살이 같은 사건의 두 얼굴이라는 것. 전쟁이 만드는 신화의 이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러시아 원정의 실패를 담는 방식이다. 60만 명의 병사들이 러시아의 혹한 속으로 들어가고, 그 중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한다. 이 규모의 비극이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 개인의 오판과 직접 연결된다. 천재적인 전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 역사상 가장 처참한 군사적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된다. 리들리 스콧의 연출이 이 영화에서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콜로세움의 스펙터클을 담았던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 전투 장면들은 혼돈스럽고 잔혹하며 비인간적이다. 나폴레옹이 신화적인 장군으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 신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위에 세워졌는가를 이 영화는 외면하지 않는다. 전쟁이 만드는 신화와 그 이면에 대한 이 영화의 가장 완성된 표현은 워털루 전투 이후다.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며, 거기서 죽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나폴레옹의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를 알려준다. 300만에서 600만 명. 이 숫자가 이 영화에서 모든 스펙터클의 의미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 이면은 숫자로 남는다.

 

나폴레옹은 완벽하지 않은 영화이지만 그 불완전함이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황제가 되는 것과 황제로 사는 것, 조세핀이라는 균열, 그리고 전쟁이 만드는 신화와 그 이면이 리들리 스콧의 연출과 호아킨 피닉스, 바네사 커비의 연기로 완성된다. 역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인물이 사적인 공간에서 얼마나 평범하고 나약했는가를 이 영화는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자막에 남은 숫자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신화의 실제 비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