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엘리(2021)는 1946년 윌리엄 린지 그레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누아르 스릴러다. 1947년 에드먼드 굴딩이 먼저 영화화했지만, 델 토로는 원작 소설에 더 충실한 버전을 만들었다.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하는 야망 넘치는 사기꾼 스탠턴 칼라일의 상승과 추락을 담은 이 영화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자신을 잠식하는지를 정밀하게 해부한다. 화려한 시각적 미장센과 촘촘한 심리 묘사가 결합된 이 작품은, 인간이 타인을 조종하려 할 때 결국 가장 깊이 조종당하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냉혹하게 증명한다.

야망이 파놓은 함정
나이트메어 엘리는 처음부터 불안한 영화다. 스탠턴 칼라일(브래들리 쿠퍼 분)이 어두운 밤에 무언가를 불태우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를 즉각적으로 암시한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떠돌다 우연히 카니발에 흘러든다. 그곳에서 그는 독심술사 부부의 공연을 보고, 그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한다. 스탠턴은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계산한다. 그의 야망은 처음부터 카니발을 넘어선 더 큰 무대를 향하고 있다. 카니발이라는 공간은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환상이 집결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속임수와 조작이 합법화된 공간이다. 관객은 공연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그 허구에 참여한다. 스탠턴은 이 공간에서 속임수의 문법을 배운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 어떤 말을 들으면 의심을 내려놓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 이 기술은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동시에,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원인이 된다. 스탠턴의 야망은 단계적으로 확장된다. 카니발에서 이른바 독심술 공연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도시의 부유층을 상대로 훨씬 정교한 사기를 꿈꾼다. 그는 함께하는 젊은 여성 몰리(루니 마라 분)와 함께 화려한 클럽을 무대로 상류층 관객들을 상대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심리학자 릴리스 리터(케이트 블란쳇 분)를 만난다. 릴리스는 스탠턴과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다. 그녀도 타인의 심리를 읽고, 그것을 자신의 목적에 활용하는 전문가다.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이 영화의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야망이 파놓은 함정의 핵심은, 그 함정이 처음에는 전혀 함정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탠턴은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사람들을 읽고,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이 능력이 그에게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을 심어준다. 그는 자신이 결코 속지 않는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바로 그 확신이 그를 가장 위험한 상태로 만든다.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통제를 잃는 순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함정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따뜻하고 노란빛이 도는 카니발의 색채로 가득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색이 차가워지고 어두워진다. 스탠턴이 오르는 계단마다 화면은 더 차가운 색조를 띠며, 그가 올라갈수록 그가 서 있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암시한다. 야망의 상승이 곧 추락의 준비라는 것을, 영화는 색채의 언어로 미리 경고한다.
읽는 자와 읽히는 자
나이트메어 엘리에서 가장 치밀하게 설계된 관계는 스탠턴과 릴리스 리터 사이의 심리전이다. 릴리스는 심리학자로서 부유한 의뢰인들의 비밀을 다루는 인물이다. 그녀는 스탠턴의 재능을 즉각적으로 알아보고, 동시에 그의 한계도 간파한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이 인물을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만든다. 그녀는 언제나 한 발 앞서 있으며, 자신이 앞서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스탠턴은 릴리스를 파트너로 생각한다. 그녀의 의뢰인 정보와 자신의 독심술 기술을 결합하면 완벽한 사기가 가능하다고 계산한다. 그는 릴리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 자체가 릴리스가 설계한 것일 수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누가 진정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를 끝까지 모호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그 모호함이 해소되는 순간, 관객은 뒤늦게 깨닫는다. 처음부터 게임의 규칙을 정한 것은 릴리스였다는 것을. 읽는 자와 읽히는 자의 역학은 이 영화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 카니발에서 스탠턴은 관중을 읽는 자였다. 상류층 클럽에서 그는 부유한 의뢰인들을 읽는 자였다. 그러나 릴리스 앞에서 그는 읽히는 자가 된다. 이 역전이 이 영화의 핵심 구조다. 인간은 자신이 읽는 자라고 믿을 때 가장 쉽게 읽힌다. 자신이 타인을 파악하고 있다는 확신이 오히려 자신의 맹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스탠턴이 진행하는 사기의 핵심 대상은 에저 그린들(리처드 젠킨스 분)이라는 노인이다. 그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한다. 스탠턴은 그 열망을 이용해 죽은 자와의 교신을 연출하려 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복잡한 순간이다. 스탠턴이 그린들을 착취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린들이 원하는 것이 진짜 위로라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이 복잡성을 단순하게 해소하지 않으며, 사기와 위로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보여준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하는 릴리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현대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누아르 장르에서 전형적인 팜 파탈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 역할을 완전히 전복한다. 팜 파탈은 보통 남성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 존재로 그려지지만, 릴리스는 자신의 목적과 논리를 가진 독립적인 행위자다. 그녀가 스탠턴을 이용하는 것은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 냉정한 합리성이 그녀를 더욱 위험하고 매혹적으로 만든다.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이트메어 엘리의 원제는 Nightmare Alley로, 카니발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인 긱(geek)과 연결된다. 긱은 카니발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물어뜯는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으로, 술과 약물에 절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은 채 살아가는 존재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이 긱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탠턴의 이야기는 결국 한 인간이 어떻게 그 지점까지 도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스탠턴을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의 과거에는 설명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고, 그것이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영화는 암시한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고, 그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타인을 조종하는 능력을 발전시켰다. 그의 야망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언제나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이해가 스탠턴에 대한 연민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 연민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택이다. 스탠턴은 여러 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카니발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고, 몰리의 불안,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의심들. 그러나 그는 매번 더 큰 야망을 선택한다. 이 반복된 선택이 그를 괴물로 만든다. 환경이나 타인이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선택들이 축적되어 그를 현재의 자리로 데려온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공포와 괴물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진짜 괴물은 대부분 인간이다. 나이트메어 엘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긱이라는 존재는 처음에 괴물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안다. 그것은 선택의 연쇄이며, 조건의 결과이며, 동시에 인간 야망의 필연적인 종착점이다. 델 토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묻는다. 괴물과 인간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는 이 긴 하강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그는 스탠턴의 자신감과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그 이면에서 균열이 커져가는 과정을 몸으로 표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얼굴에 담긴 표정은, 긴 여정 끝에 자신이 항상 두려워하던 그 자리에 도달했음을 깨닫는 순간의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공포와 체념, 그리고 기묘한 해방감이 뒤섞인 그 표정이 이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로 남는다. 괴물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자란다.
나이트메어 엘리는 화려하고 어둡고 정밀한 영화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누아르 장르의 관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심리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해부한다. 야망이 어떻게 함정이 되는지, 타인을 읽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자신을 읽히는 상태로 만드는지, 그리고 괴물이 어떻게 인간으로부터 자라나는지를 이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보여준다. 긱이 되는 것은 언제나 타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가까운 이야기인지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