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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 리뷰 (도망치는 자와 쫒는 자, 허구와 현실 사이, 2026년 고메스가 말하는 영화의 가능성

by tae11 2026. 4. 27.

미겔 고메스 감독의 2024년 작품 그랜드 투어는 1917년 영국 식민지 버마를 배경으로, 결혼을 앞두고 도망친 영국 공무원 에드워드와 그를 쫓아 아시아를 횡단하는 약혼녀 몰리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77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16mm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으며, 허구의 서사와 현실의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 자체를 탐구한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가 공동 제작한 이 영화는 2026년 현재 동시대 예술 영화 중 가장 대담하고 아름다운 형식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고메스의 6번째 장편인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넓은 지리적 범위와 가장 깊은 주제적 야심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랜드 투어 포스터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 — 에드워드와 몰리의 아시아 횡단

영화는 1917년 버마 랑군의 부두에서 시작된다. 영국인 공무원 에드워드는 7년 만에 찾아오는 약혼녀 몰리를 기다리며 선착장에 서 있다. 꽃다발을 손에 들고, 그는 그녀를 환영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저 멀리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바뀐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에드워드는 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변명의 편지를 써두고, 싱가포르행 배에 오른다. 이것이 그랜드 투어의 시작이다. 에드워드의 도주는 단순한 결혼 기피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의 무기력한 방황이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선택해야 할 삶 앞에서 얼어붙어버린 사람이다. 고메스는 이 인물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도망치는 과정을 통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도망이라는 행위가 때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준다.

에드워드가 도망치는 경로는 싱가포르, 방콕, 사이공, 마닐라, 나가사키, 상하이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여정을 통해 20세기 초 아시아의 풍경과 현재의 아시아를 동시에 담아낸다. 이 동시성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시각적 전략이다. 각 도시가 에드워드에게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안도하고, 방콕에서는 잠시 정착할 것을 생각하고, 그러다 다시 움직인다. 그 반복이 이 인물의 심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버마에 도착한 몰리는 에드워드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뒤를 따라 같은 경로로 아시아를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여정이 번갈아 펼쳐지면서, 두 사람은 같은 도시를 다른 시간에 통과하고, 같은 풍경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다. 이 평행 구조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서사 장치다.

몰리의 시점이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초반의 에드워드 중심 서사가 점점 몰리의 이야기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이 영화는 도망치는 자의 이야기에서 쫓는 자의 이야기, 나아가 쫓는 행위 자체를 통해 성장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변해간다. 몰리는 에드워드를 쫓는 과정에서 에드워드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이 변화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몰리는 베트남의 응옥이라는 인물과 만나는데, 이 만남이 몰리에게, 그리고 영화 자체에 전환점이 된다. 응옥은 한 명만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몰리를 변화시키고, 영화의 방향을 바꾼다. 이 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에드워드와 몰리가 결국 만나는지 만나지 못하는지를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의 열린 결말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도착과 만남보다 여정 자체에 관한 것임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아름다웠다면, 도착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주장한다.

허구와 현실 사이 — 16mm 흑백과 다층적 형식

그랜드 투어의 가장 독특한 특성은 그것이 허구와 현실 사이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서사는 1917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픽션이지만, 화면 위에 담긴 이미지들은 미겔 고메스 감독이 실제로 아시아를 여행하며 촬영한 현재의 풍경이다. 배우들이 과거를 연기하는 동안, 카메라는 현재의 아시아를 기록한다. 이 시간의 혼재가 이 영화를 단순한 시대극이나 단순한 다큐멘터리와 다른 무언가로 만든다. 16mm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이미지들은 이 혼재를 더욱 강화한다. 흑백은 시간을 중립화한다. 과거와 현재가 같은 색조 안에서 공존할 때, 관객은 이것이 언제의 이야기인지를 잠시 잊게 된다. 그 망각의 순간이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다.

고메스의 연출은 내레이션을 통해 이 층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3인칭의 내레이터 목소리는 영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여러 언어로 전환되며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다언어 내레이션은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 아시아의 복잡한 언어적 현실에 대한 고메스의 성찰이기도 하다. 누가 이 이야기를 말하는지,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가 이 영화에서 하나의 주제가 된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언어로 말해질 때 그것은 같은 이야기인가, 다른 이야기인가. 이 질문이 이 영화의 다언어 내레이션 안에 숨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메스는 촬영 중 팬데믹을 만났고, 셧다운 기간에는 현지 크루들의 도움을 받아 원격으로 촬영을 이어갔다. 이 제작 환경 자체가 영화의 주제인 시간과 거리, 그리고 불가능한 연결에 대한 메타포가 되었다. 에드워드와 몰리가 같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감독과 촬영 현장도 연결되면서 단절되어 있었다. 이 우연한 평행이 이 영화에 예기치 않은 깊이를 더했다.

이 영화의 서사적 구조 역시 혁신적이다. 이미지로 전개되는 영화와 목소리로 전개되는 영화가 한 편 안에 공존한다. 두 흐름은 이따금 만나고,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 이 분리와 결합이 반복되면서 영화는 단선적인 서사가 아닌 복수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이 구조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낯섦이 이 영화의 가장 정확한 언어임을 알게 된다. 초기 영화의 기술인 아이리스 화면과 슈퍼임포즈가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고메스는 영화의 역사를 이 영화 안에 포함시키면서, 그랜드 투어가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 형식에 대한 사랑 고백임을 보여준다. 고메스는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글에서 발견한 한 문장이었다고 밝혔다. 그 문장 하나에서 두 사람의 아시아 종단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우발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설명한다. 그 문장은 내 사랑, 내가 가고 있어요라는 것이었다. 누가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고메스는 이 영화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이 129분의 흑백 이미지로 펼쳐진다.

2026년 고메스가 말하는 영화의 가능성

그랜드 투어가 2026년 현재 강하게 읽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히 아름다운 형식 실험을 넘어, 시간과 사랑과 도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왜 도망치는가. 몰리는 왜 쫓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그 답을 찾도록 공간을 열어둔다. 이 열린 구조가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다. 고메스의 연출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는 아시아를 이국적인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버마, 태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의 풍경들은 서사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능동적인 참여자다. 각 도시가 에드워드와 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고, 각 장소에서 두 인물은 다른 것을 발견한다. 이 영화가 여행 영화이면서 동시에 내면 영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메스는 유럽인 감독이 아시아를 촬영할 때 빠지기 쉬운 시선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현지 크루와의 협업, 현지 언어의 내레이션, 그리고 아시아의 현재를 과거의 허구와 동등하게 배치하는 방식이 그 노력의 산물이다. 아시아는 이 영화에서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협력자다. 그 협력이 이 영화를 단순한 유럽인의 아시아 여행기와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흑백 촬영의 시각적 아름다움도 이 영화의 중요한 성취다. 인도의 강, 일본의 거리, 베트남의 시장이 흑백으로 포착될 때 그것들은 시대를 초월한 이미지가 된다. 이 이미지들이 허구의 서사와 겹쳐질 때, 관객은 이것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잠시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 혼란이 이 영화의 가장 의도적인 효과다.

칸 영화제 감독상은 이 영화의 형식적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영화가 여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새로운 방식이 관객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2026년 현재, 스트리밍과 빠른 소비의 시대에 그랜드 투어는 느리게, 그리고 깊게 보는 경험을 제안한다. 이 영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느림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미덕이다. 그랜드 투어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여정 그 자체를 사랑하는 영화다. 에드워드가 도망치는 동안 보았던 것들, 몰리가 쫓아가는 동안 만났던 것들이 이 영화의 진짜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관객의 마음에 남는 방식은 이야기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고메스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한다. 그것은 시간을 담는 것,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랜드 투어는 그 발견의 여정이며, 관객도 그 여정의 일부가 된다. 이 영화를 본 뒤 아시아의 어느 도시 이름이 다르게 들린다면, 그것이 이 영화가 성공한 증거다.

 

그랜드 투어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6년 다시 본 이 작품은 미겔 고메스가 허구와 현실, 과거와 현재, 도주와 추적이라는 대립항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에드워드는 결국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분명하게 어딘가에 도달했다. 그랜드 투어는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넓힌다. 이 여정에 동참한 관객은,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세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